새 정부가 두 달 후 출범한다. 국운의 변곡점에 설 새 정부의 사명은 막중하다. 자유와 기회가 넘치고 공동체 가치가 존중되는 ‘너그럽고 넉넉한 문명국’으로 이끌기를 바란다. 과제가 수북하다. 철 지난 이념(탈원전), 속 좁은 종족주의(위안부 합의 파기)와 ‘떼쓰기’(가덕도 신공항)가 상식과 과학을 압도하는 강퍅한 국정을 이젠 끝내야 한다.
수사와 감사 등 견제 장치를 복원하고 협치를 뿌리내리며 국민 통합을 이뤄야 한다. ‘억강부약’의 갈라치기(자사고 폐지), 도덕 지향의 탁상공론(임대차 3법), 무책임한 대증요법(획일적 정규직 전환)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하향 평준화로 귀결될 ‘보모(保姆)국가’ 환상(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깨야 한다. 팽배한 ‘내로남불’과 ‘남 탓’에 맞서 자율과 책임이 선순환하도록 공민 의식도 북돋워야 한다.
최우선 과제는 당선인의 약속처럼 국민 통합이다. 이번 대선은 소름 돋을 만큼 표심이 양분됐다. 편싸움이 격화하고 앙금이 굳기 쉽다. 국회도 큰 격차의 여소야대 구도다. 협치가 필수다. 통일신라는 여제(麗濟) 유민을 포용했기에 연착륙했다. 고구려·백제와 말갈 출신까지 고루 편성한 군대에 서라벌 방어·치안을 맡겼다. 초대 국로(國老)엔 백제 출신 경흥(憬興)을 발탁했다. 왕건도 상대를 후히 대하고 자신은 낮추는 ‘중폐비사(重弊卑辭)’ 외교로 후삼국을 통일했다.
반면교사는 조선 말기 세도정치다. 소수의 척신이 권력을 독점·세습하고, 대간(臺諫)의 감찰·탄핵 기능이 퇴색하자 부패가 만연해 끝내 국권마저 잃었다.
경제와 복지 등 민생문제도 화급하다. 특히 개발시대 ‘큰 정부’ 유산에 이념 지상의 교조주의까지 가세한 정부 만능 풍조가 걱정이다. 최근 공공부문의 역할·규모는 팽창일로다.
정부 빚과 국민 부담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매사에 정부가 나서면 민간의 자율·창의와 도전·혁신이 위축돼 경제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공산권은 논외로 해도, 20세기 중반 영국·인도·이스라엘의 참담한 시행착오가 웅변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은 시장경제야말로 탐욕의 해악을 억누르고 가난에서 벗어나는 최적의 기제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어떤 문제를 풀려는 정부 대책은 늘 또 다른, 때론 더 큰 문제를 부른다.
물론 취약계층은 정부가 나서서 도와야 한다. 다만 복지의 목표는 수혜자의 자활이지, 마냥 수혜의 폭을 늘리는 게 아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겐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지 나랏돈으로 만드는 일자리는 연명용 산소마스크와 다름없다. 설탕으로 당장 활기를 찾을 순 있어도 체질은 더 나빠진다.
그렇다고 해도 서둘러 많은 걸 바로잡거나 전임자와 무조건 차별하려는 유혹은 뿌리쳐야 한다. 차분하고 질서 있는 개혁이 긴요하다. 현 정부의 실정도 표심에 영합한 졸속 과잉입법과 날림정책 탓 아닌가. 공론과 숙의를 활성화해야 한다. 국민연금 개혁 같은 핵심 정책은 국민투표나 공론조사를 거치고, 전문가의 검증·창도를 강화해야 한다. 원자력발전처럼 되돌리기 어려운 백년대계는 임기가 정권보다 길게 보장된 전문가 위원회에서 큰 틀을 결정하면 좋겠다.
세종대왕 시절 국력의 급신장엔 시사(視事)·경연(經筵)·윤대(輪對) 등 활발한 ‘여의(與議) 정치’도 한몫했다. 세종은 여진족 정벌에 앞서 의견을 수렴하느라 석 달을 끌었다. 조선왕조 세제의 골격이던 공법(貢法)은 반년 동안 17만 명 이상 여론조사와 14년 동안 연구·시험을 거쳐 확정했다. 당시 왕정보다 진화한 지금의 공화정은 그 요체가 합의의 탐색이다. 설익은 외곬 정책을 거르고, 공감대가 넓고 오래가도록 정책을 벼려야 한다.
그러자면 모두가 힘을 보태야 한다. 위정자(장수)는 혜안·양심과 도량을, 공직자·법관·국책연구원(관병)은 영혼과 용기를 되찾아야 한다. 지식인·언론·시민단체(의병)는 열정과 전문성을 갖추고, 노조·직능단체(향병)는 편견과 과욕을 버려야 한다. 국민(민방위대)의 공민 의식도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