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산불 가까스로 꺼졌지만…삶 터전 잃은 이재민들 [르포]

입력 2022-03-13 13:30
수정 2022-03-14 08:06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정부의 피해보상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경북 울진군 호월1리 주민 김무하 씨)

12일 오전 11시30분 울진군 북면에 위치한 덕구온천호텔 1층 로비는 어두운 표정의 이재민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이곳은 지난 4일부터 이어진 울진·삼척 산불로 생계 기반을 잃은 지역 주민들의 임시 거주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울진국민체육센터에 대피했던 이재민 중 117명이 이곳으로 옮겨와 머무르게 됐다.

이재민들은 1층 식당에 모여 점심식사 시간 내내 앞으로 먹고 살 걱정을 토로했다. 호월1리에 사는 김선녀 씨(64)는 “개 한 마리, 닭 한 마리만 빼고 염소 10마리를 포함해 기르던 가축들이 모두 불에 탔다”고 말했다.

소곡1리에서 양봉업을 운영하던 손미옥 씨(72)는 “양봉장 330㎡(100평)이 다 타고 정성들여 지은 새 집도 소실됐다"고 했다. 고추와 배추 농사를 짓고 있는 80대 남모 씨는 “신분증만 겨우 가지고 나왔다”며 “집 뿐만 아니라 밭과 보관하고 있던 씨앗들까지 다 타버렸다”고 설명했다.


임시 거주시설 생활의 불편함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위로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산불 연기를 마신 후 가슴에 통증을 느낀다”는 강현철 씨(58)는 “이곳에서 울진읍내에 위치한 의료원을 가려면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데 배차간격이 너무 길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막막하기는 이재민을 지원하는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울진군청 소속 복지정책 담당 공무원은 “구호물품의 수요·공급이 맞지 않아 난처한 상황”이라며 “지금은 현물보다 현금지원이 더 절실한 때”라고 호소했다. 울진군 장애인 복지관 소속 활동지원사는 “담당하는 장애인이 이재민이 되면서 읍내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출퇴근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이재민들은 “정부의 추가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울진군 산불 이재민 피해 대책 위원회 임시위원장 장도영 씨(72)는 “정부가 최대 1600만원을 지원하다고 했지만 생계기반을 완전히 잃은 마당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며 “8840만원까지 복구자금을 대출해준다고 하지만 노인들이 대부분이어서 갚을 여력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이번 산불로 인한 이재민 피해는 단순히 이들의 경제적 피해에만 국한되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전국 생산량의 10%대를 차지한 울진 송이버섯 농가 피해가 막대해 벌써부터 가격 급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의 피해 실태조사가 14일 마무리되는 대로 중앙피해합동조사단을 구성해 18일까지 실태파악 후 복구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울진=최세영 기자 seyeong202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