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11일 북한의 최근 두 차례 미사일 도발이 우주발사체로 가장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한·미가 함께 북한 미사일에 대한 정보 판단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은 신규 대북 제재까지 예고했다. 북한이 대선 종료와 동시에 연일 ICBM 도발을 시사하고 나서자 한국의 새 정부 출범을 노린 북한의 고강도 도발에 대해 사전 경고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준중거리미사일 아니라 신형 ICBM”
국방부는 이날 “북한이 지난달 27일과 이달 5일 발사한 탄도미사일은 한·미의 정밀 분석 결과 2020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 열병식을 계기로 북한이 최초 공개하고 개발 중인 신형 ICBM 체계와 관련된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어 “향후 북한이 우주발사체를 가장한 동 미사일의 최대사거리 시험 발사를 앞두고 관련 성능을 시험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군당국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당시엔 준중거리미사일(MRBM)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군 관계자는 “3~4일간 한·미 정보당국에서 다출처 정보를 따져 보니 새로운 ICBM 체계와 관련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며 “발사 당시 포착된 제원은 MRBM에 가까웠지만 신형 ICBM 동체를 갖고 조절해서 MRBM의 궤적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도 비슷한 시간 이 같은 사실을 공개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ICBM 발사를 우주 활동으로 가장하려는 시도”라며 “북한은 이번 발사 체계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미국은 북한이 이 같은 무기를 개발하고 확산하는 것에 반대하는 단합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판단에 이 정보를 공개적으로 다른 동맹국들과 공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주 초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부는 서해상에서의 감시 활동을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한·미가 지적한 북한의 신형 ICBM은 ‘화성-17형’이다. 화성-17형은 기존보다 직경과 길이가 커지고 다탄두(MIRV) 형상을 지녀 ‘괴물 ICBM’으로 불린다. 사거리는 1만3000㎞ 이상으로 미국 본토 전역이 사정권에 든다. 화성-17형은 2020년 열병식에서 처음 공개됐는데, 당시 실려 있던 이동식발사차량(TEL)의 바퀴는 11축 22륜으로 식별됐다. 이는 2017년 11월 발사한 ICBM ‘화성-15형’의 TEL(9축 18륜)보다 훨씬 크다. 미사일의 총길이는 22~24m로 추정되는데 이는 전 세계에 현존하는 ICBM 중 가장 길다. 탄두부 형상도 핵탄두 2∼3개가 들어가는 MIRV 형태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2018년 5월 선제적으로 폭파한 풍계리 핵실험장의 갱도도 일부 복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최근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2018년 5월 폭파했던 갱도 중 일부의 복구로 추정되는 불상활동이 식별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풍계리 핵실험장에 새 건물이 들어서고 기존 건물을 수리하는 정도의 정황은 포착됐지만 갱도 복구 정황까지 파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은 2018년 당시 2·3·4번 갱도를 폭파했는데 이 중 3번과 4번 갱도를 복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금강산의 한국 측 시설도 철거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美, 새 정부 출범 앞두고 ‘경고 메시지’한·미 군당국이 앞선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분석을 공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대선을 전후로 북한이 연쇄 ICBM 도발을 시사하고 나서자 선제적으로 ICBM 관련 동향을 모두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부터 ‘힘에 의한 평화’와 한·미 동맹 강화를 강조해 온 점도 반영됐다는 관측이다.
미국은 추가 대북 제재까지 예고하고 나섰다.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국과의 공동발표에 앞서 “11일 북한이 무기 프로그램 진전 기술에 접근하는 것을 더 어렵게 하기 위한 새로운 조치를 발표할 것”이라며 “앞으로 다양한 추가 조처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사일 부품 반입 관련 인물이나 기관 등을 제재 대상으로 추가 지정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도발 시점으로 다음달을 유력하게 꼽는다. 북한이 4월 시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다음달 15일 김일성 생일(‘태양절’) 110주년을 도발 시점으로 삼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다음달 윤 당선인의 인수위원회가 출범한다는 점에서 북한이 새 정부 ‘길들이기용’으로 연쇄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ICBM은 기본적으로 대미 압박 메시지 성격이 강하지만, 차기 보수 정부 출범과도 연동시켜 최종 발사 시점을 선택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워싱턴=정인설 특파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