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통사들의 관심사야 한두가지가 아니겠지만, 최근 두드러지는 키워드 중 하나는 '강남'이 아닐까 합니다. 무섭게 떠오른 이커머스뿐 아니라 전통의 오프라인 유통까지 강남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유통부터 얘기해볼까요. 전통 유통 강자 롯데백화점은 신세계 출신 정준호 대표 취임 이후 '상품 본부'를 강남 삼성동으로 이전하기로 했습니다. 백화점은 고급 상품을 판매하는 곳인만큼 어느 상품을 팔 것인지를 결정하는 본부는 핵심 중의 핵심인데요, 이 기능을 명동에서 강남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치동 한티역 앞에 있는 강남점을 개·보수해 최고급으로 럭셔리화 시킬 계획입니다.
이는 쇼핑의 중심지가 명실상부하게 강북에서 강남으로 옮겨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유통업계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백화점 3사를 볼까요. 신세계백화점의 명실상부한 1등 점포는 반포에 있는 강남점입니다. 매출(총 상품 판매액 기준)이 국내 점포 중 유일하게 2조원을 넘습니다. 구매력과 유동인구가 모두 받쳐주는 쇼핑의 '메카'죠.
현대백화점은 신세계강남점만큼 큰 점포는 아니지만 삼성동의 무역센터점, 압구정동 본점이 굳건합니다. 삼성동은 향후 현대차그룹이 개발하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 등과 맞물려 서울의 새로운 중심이 될 전망이고, 압구정동은 둘째라면 서러운 전통의 부촌입니다.
반면 롯데백화점은 강남에 이렇다 할 점포가 없습니다. 신세계 출신인 정준호 신임 대표는 이를 롯데백화점의 약점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유통 1등으로 재도약하려면 '강남'을 잡지 않고는 어렵다는 얘기죠.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패션·명품 기획자 출신인 정 대표는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 밀라노 주재원 등으로 일하면서 해외 트렌드를 국내에 가장 먼저 수입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청담동에 럭셔리한 본사를 보유한 기업입니다. 이 회사 임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트렌드의 중심인 강남 한복판에 본사가 있는 게 패션기업으로서는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최근 서울에서 가장 '핫'한 곳은 젊은 '패션피플'들이 즐비한 압구정로데오역(청담동) 주변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강북보다는 '돈'이 몰리는 강남이 유행과 트렌드를 선도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온라인은 어떨까요. 신세계그룹의 이커머스 회사 SSG닷컴은 곧 본사를 광화문에서 강남 센터필드로 옮긴다고 합니다. 오프라인과 달리 스마트폰 안에서 쇼핑을 즐길 수 있는 온라인의 '강남행'은 무엇 때문일까요.
다름 아닌 턱없이 부족한 개발자들 때문입니다. 최근 이커머스를 비롯한 IT기업들의 골칫거리는 개발자들을 어떻게 끌어오느냐는 것인데, 판교를 제외하면 개발자들은 테헤란로 주변을 벗어나기 싫어한다고 합니다. 생활터전이 대부분 강남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실제로 컬리, 요기요, 지마켓글로벌(옛 이베이코리아), 티몬, 위메프 등 이커머스 기업들은 대부분 강남권에 위치했습니다. 쿠팡과 우아한형제들은 잠실에 터를 잡았죠.
과거 한국의 쇼핑 중심지는 단연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의 본점이 있는 강북 도심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옛말이 된 것 같네요. 영원한 게 없다지만 한국의 트렌드는 정말 빨리 바뀌는 것 같습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