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으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면서 여성가족부는 부처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윤 당선인은 지난 1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올린 후 이를 주요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다. 지난 1월 10~11일 리얼미터 조사 결과 여가부 폐지에 찬성한 응답자가 51.9%에 달했을 정도로 여가부 폐지 이슈는 뜨거웠다. 폐지되면 고용부 등에 업무 이관 가능성윤 당선인의 약속대로 여가부가 폐지된다면, 여가부의 기존 업무는 다른 부처로 이관될 가능성이 높다. 여가부의 업무는 크게 여성·성평등 정책, 청소년정책, 가족정책, 권익증진으로 나뉜다.
이가운데 성별 불평등과 직결되는 여성·성평등 정책(올해 기준 예산 938억원)은 폐지되거나 축소될 가능성도 있다.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을 돕거나(737억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을 지원(109억원)하는 사업이 여기 포함된다. 여성취업 부문은 업무가 겹치는 고용노동부로 이관될 가능성도 있다.
여가부 예산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가족 정책(9063억원), 청소년 정책(2716억원)은 업무가 겹치는 보건복지부나 교육부로 옮겨질 가능성이 높다. 한부모 가족 지원, 아이 돌봄 서비스, 가정밖청소년 지원 등의 사업이다. 또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권익증진 정책은 법무부로 옮겨질 수 있다.
청소년과 가족 정책에 관해서는 독립된 기구가 신설될 수도 있다. 윤 당선인이 아동과 가족, 인구 감소 문제를 다룰 별개의 부처를 신설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때 축소됐지만 원점으로여가부 폐지론은 정치권 단골 이슈다. 간판과 권한이 계속 바뀌었고, 폐지 논쟁도 처음이 아니다.
여가부의 전신은 1998년 김대중 정부 때 생긴 대통령직속위원회인 여성특별위원회다. 1995년 UN이 성평등 결의안을 낸 후 다양한 나라에서 여성부가 생긴 영향이었다. 2001년에는 고용노동부의 여성·성폭력 관련 업무를 넘겨받아 여성부가 신설됐다.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는 여성가족부로 개편됐다.
2007년 이명박 정부 때도 정부 조직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여가부를 폐지하려 했으나, 여성단체와 통합민주당이 강력히 반발했다. 가족·보육 업무만 보건복지부로 옮겨졌고, 여성정책 부분을 남겨 여성부는 그대로 남게 됐다. 이마저도 2010년에는 보건복지부의 업무 과중으로, 여성부가 청소년·가족 업무를 다시 받아오면서 부처가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됐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때도 부처명에서 여성을 빼고 양성평등 가족부로 바꾸는 안이 추진됐으나 실현되지는 않았다.
윤 당선인이 공약대로 정부조직을 개편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 부처를 없애려면 정부조직법을 바꿔야 한다. 행정안전부 논의 이후 국회까지 거처야 한다. 민주당이 180석 가까운 의석을 가진 국회에서 상당한 논쟁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윤 당선인이 1%포인트 미만의 근소한 표 차이로 승리한 것도 '여가부 폐지'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거는 데 부담이 될 수 있다. '30조 성인지 예산 낭비' 가짜뉴스 시달려 폐지론이 나올 때마다 여가부는 가짜뉴스에 시달렸다. 국방예산에 맞먹는 30조원 규모의 ‘성인지 예산’을 여가부가 쓴다는 주장이 대표적이었다. 윤 당선인도 지난달 유세 중 이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올해 성인지 예산은 26조8821억원이지만, 특별한 정책을 위해 따로 편성된 예산이 아니다. 각 부처에 이미 존재하는 사업을 ‘성인지 예산’이라는 기준으로 분류하는, 일종의 '분류 기준'이다. 어떤 정부 사업의 예산이 성평등 관점에서 적절하게 쓰이는지 점검해 성평등에 영향을 주는 사업이라면 ‘성인지 예산 사업’으로 명명하는 식이다.
지난해 10월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낸 '2022년도 성인지 예산서 분석'에 따르면 청년을 채용하는 중소기업에 지원금을 주는 고용노동부의 ‘청년내일채움공제’ 사업도 성인지 사업으로 분류된다. 성평등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직접 목적 사업'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성평등 달성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업에는 올해 8754억원이 배정됐다.
여가부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인데는 여가부의 실책이 한몫 했다는 분석도 있다. 여가부는 여당 인사들의 권력형 성범죄나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회계부정 사건에 어떤 목소리도 내지 않고 미온적으로 대처해 ‘여당가족부’라는 비판을 받았다.
2020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광역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을 때, 당시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박원순, 오거돈 전 시장 사건은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가 맞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아직 수사 중인 사건”이라고만 답했다. 성범죄를 예방하고 피해자의 권익 증진을 담당해야 할 여가부 장관으로서 부적절한 답변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같은해 5월 정의연 회계부정 사건 때는 여가부가 야당 의원이 요구한 관련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최근에는 대선을 앞두고 여가부가 여당의 정책 공약 개발에 관여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 때문에 지난해 11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여가부 김경선 차관 등 공무원 2명을 '대선공약 개발' 의혹으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