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더 오를 것"…달러 예금에 돈 몰린다

입력 2022-03-08 17:05
수정 2022-03-09 00:38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등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국내 은행마다 달러 예금에 뭉칫돈이 몰려드는 등 환율 추가 상승에 베팅하는 개인과 기업이 크게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보다 9원90전 오른 1237원에 마감했다. 2020년 5월 29일(1238원50전) 후 1년10개월 만에 최고다. 이날 급등세는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달러를 비롯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된 영향이라는 평가다. 치솟는 국제 유가도 달러 가치를 밀어 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달러 예금 잔액도 크게 늘고 있다.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 등 5대 은행에 따르면 이들 은행의 지난 4일 기준 달러 예금 잔액은 587억9606만달러(약 72조7300억원)로 지난 1월 말(556억816만달러) 대비 31억8790만달러(약 3조9400억원) 늘었다. 5대 은행의 달러 예금은 지난해 11월 607억988만달러로 전달 대비 10억8582만달러 증가하면서 정점을 찍은 뒤 두 달 연속 내리막길을 탔다.

그러다 러시아가 지난달 말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2월에서 올 2월 사이 달러당 1180~1190원 선에서 이날 최고 1238원까지 올랐다. 그럼에도 은행 달러 예금에 돈이 몰리는 건 커진 불확실성으로 인해 경제 주체들이 향후 추가적인 달러 가치 상승을 점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외 의존도가 높고 지정학적 이슈에 취약한 한국 경제와 원화의 특성이 한몫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현식 하나은행 투자전략섹션 팀장은 “예상치 못한 전쟁이 발발했고 역시 예상과 달리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예측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며 “이런 때는 가장 안전한 자산인 달러에 대한 수요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내 은행 프라이빗뱅킹(PB) 센터마다 환율의 향방을 궁금해하는 자산가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대로 올 들어 증가세를 보였던 위안화 예금은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날 기준 원·위안화 환율은 위안당 195원96전으로 작년 말(187원35전) 대비 8원61전 올랐다. 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의 위안화 예금 잔액은 지난 1월 74억8694만위안(약 1조4650억원)으로 전달 대비 10억296만위안(약 1960억원) 늘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2월 말엔 9억6798만위안(약 1890억원) 줄었고, 이달 들어선 4일 만에 1억3062만위안(약 250억원) 추가 감소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최근 위안화 예금 움직임은 한·중 사업가들이 거액의 예금을 인출한 영향이 큰 것 같다”며 “위안화 환율도 추가 상승 전망이 나오면서 예금 신규 가입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 개인이 자산 배분 차원을 넘어 달러나 위안화에 거액을 베팅하는 전략은 위험하다고 조언한다. 전쟁 양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불확실성이 큰 데다 각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도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박 팀장은 “과거에도 단기 환차익을 노렸다가 손해를 본 개인이나 기업이 적지 않다”며 “주기상 지금의 원·달러 환율은 고점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했다.

김대훈/빈난새/김익환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