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각은 인수전이 진행되는 동안 사실 가장 강력한 인수 후보였습니다. 다만 시장이 주목하지 않았을 뿐이죠. 경쟁사들이 ‘축산물 스타트업이 무슨 돈이 있느냐’며 평가절하하다 보니 정육각의 의지와 잠재력을 제대로 못 봤습니다.”
대상홀딩스의 유기농 신선식품 업체 초록마을 매각에 관여한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상홀딩스는 지난 2일 초록마을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온라인으로 초신선 축산물을 유통하는 정육각을 선정했다. 이마트에브리데이, 컬리, 바로고 등 내로라하는 쟁쟁한 후보들을 마다하고 올해로 설립 6년차인 스타트업을 낙점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변으로 평가했다. 거래 종결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거래를 가까이 지켜본 관계자들은 ‘처음부터 정육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6년차 스타트업이 컬리, 이마트 제쳐초록마을이 시장에 매물로 나온 것은 지난해 여름께다. 친환경 유기농 제품 판매를 콘셉트로 내세운 초록마을은 온라인 신선식품 플랫폼인 컬리, 오아시스 등이 등장한 뒤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오프라인 중심의 영업망으로는 추가적인 성장이 어려워지자 매각을 결정했다.
인수전이 시작되자 정육각은 기다렸다는 듯 발빠르게 움직였다. 2016년 설립된 정육각은 꽤 오래전부터 초록마을의 경쟁력을 눈여겨본 것으로 알려졌다. 정육각과 초록마을은 취급하는 상품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신선함과 건강을 중요시하는 소비자를 주요 타깃으로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정육각은 도축장, 도매, 소매 등 복잡한 유통 단계를 단축해 도축한 지 4일 이내의 돼지고기를 빠른 시간에 배달하는 것을 콘셉트로 한다. 신선함이 중요한 만큼 배송 스피드가 생명이다. 정육각은 배송 단계를 최소화해야 하는 만큼 구매력이 높고 물류 체계가 잘 갖춰진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초록마을 역시 고가인 유기농 제품을 취급해 수도권 및 강남 등 고소득 동네에 매장이 주로 자리잡고 있다. 전국의 매장 수만 400여 개에 이른다. 정육각이 초록마을을 품으면 자연스럽게 전국 주요 핵심 상권의 오프라인 판매 거점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거기다 축산물 이외에 유기농 농산물 판매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게 돼 정육각에는 일석이조의 거래였다. 온·오프라인 통합이 과제시너지는 충분했지만, 문제는 자금력이었다. 정육각의 누적 투자유치금은 700억원 수준이다. 인수 금액이 최소 1000억원 이상인 것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재무적 투자자(FI)의 조력 없이는 초록마을 인수가 불가능했던 셈이다. 정육각의 고위 관계자들은 정육각의 주주로 있는 벤처캐피털(VC) 관계자들을 만나 초록마을 인수 필요성을 설득하며 투자를 요청했다. 스톤브릿지벤처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프리미어파트너스 등 VC들은 흔쾌히 지갑을 열었다. 오랜 기간 김재연 정육각 대표를 지켜봐온 투자자들이 진정성과 노하우에 베팅한 것이다.
그렇게 정육각은 초록마을의 새 주인이 됐다. 정육각으로서는 창사 이후 첫 대규모 인수합병(M&A)이다. 표면적으로 초록마을은 전국 단위의 회사인 데다 업력도 10년 이상이다. 이제 과제는 정육각이 자신보다 덩치가 더 큰 초록마을을 어떻게 키워 시너지를 낼지다.
업계에서는 초록마을 인수전이 예상 밖 흥행을 거둔 것에도 주목하고 있다. 매물로 나왔을 때만 해도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철 지난 오프라인 유통 플랫폼 정도로 치부됐다. 그러나 막상 인수전이 본궤도에 오르자 온라인 유통 플랫폼이 대거 뛰어들었다. 코로나19 여파를 기점으로 오프라인 업체들이 철수하는 등 사업이 저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 상황이다. IB업계 관계자는 “결국 온라인만 잘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고 온·오프라인 통합 여부가 플랫폼 업체들의 생존 여부를 판가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