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매출 수천억원 규모 중견기업 A사의 B대표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2021회계연도 감사보고서 제출을 앞두고 감사인인 C회계법인과 주요 현안에 대한 의견이 달라서다. 코스닥시장 상장사의 감사보고서 제출 기한은 정기 주주총회 1주일 전으로 통상 3월 중순께다.
사연은 이렇다. A사는 감사인 지정제에 따라 올해 회계법인이 바뀌었다. 감사인 지정제는 기업이 6년 연속 감사인을 자율 선임한 뒤 3년간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2019년 말 도입된 이 제도에 따라 A사는 지난해와 올해 감사인이 바뀌었다. 문제는 같은 안건(해외 자회사 평가)에 대한 전·현 감사인의 판단이 달라지면서 불거졌다.
B대표는 “현 감사인이 자회사 평가에 필요한 기본 요소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려고 해 혼란스럽다”며 “심지어 작년 감사인이 작성한 감사보고서도 현 감사인 기준에 따라 재작성을 요구해 당황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관성 없는 회계감리는 기업 경영에 부담이 된다”고 덧붙였다.
A사는 현 감사인이 전 감사인과 다른 잣대를 적용하려는 게 해외 자회사 평가가 올해 ‘테마감리’ 대상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테마감리는 금융감독당국이 재무제표 심사 때 중점 점검하는 회계 이슈다. 그런 만큼 감사인으로선 주의를 기울이기 마련이지만 감사인 지정제 도입 이후 감사인이 바뀔 때마다 기준이 제각각인 건 문제라는 지적이다.
B대표는 “한국이 코로나19 보릿고개를 잘 극복하는 건 제조업 덕분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정작 허리 역할을 하는 중견기업은 지원에서 소외돼 있다”고 푸념했다. 이어 “특수 상황을 감안해 한시적으로라도 경영 부담을 덜 수 있는 정책적인 배려가 절실하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