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자격시험이라고 해서 AI의 근본부터 파고들 이유가 없죠. 중요한 건 실무에서 어떻게 쓰느냐니까요. 시험을 고안한 우리 팀도 대부분이 ‘문돌이’ 출신입니다. 비전공자라도 AI를 잘 다룰 수 있게 도와주는 시험이 되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잘 몰라도 AI를 다룰 수 있을까? 최근 이런 물음에서 출발한 시험이 하나 있다. 기업에서 AI 활용 역량을 점검하기 위해 KT가 고안한 AI 자격인증 ‘AIFB(AI Fundamentals For Business)’다. 프로그래밍 입문자 수준이라도 데이터 분석과 모델링 능력을 평가해 ‘자격증’을 주는 시험으로 오는 26일 첫 개인 자격 시험을 치른다. 국내 AI 자격시험 중 대기업이 직접 고안해 실무 평가까지 하는 건 AIFB가 처음이다.
이 시험을 기획한 사람들 역시 대부분이 문과생이다. 시험 개발을 총괄한 이종형 KT 오픈AI교육플랫폼p-tf장(상무)을 비롯해 팀원 8명 중 6명이 문과 또는 비전공자 출신이다. 이 상무는 “컴퓨터공학 전공자의 시선에서 문제를 출제하면 ‘코딩 예제’가 돼버리고 만다”며 “일반 사무직이나 마케팅 직원들도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AI 활용 ‘과제’를 던져주려면 비전공자의 시선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8일 이 상무와 팀원들을 만났다.
AIFB의 핵심 평가 항목은 데이터 분석 및 AI 모델링 역량이다. 문제들도 기업 실무에 맞췄다. 가령 ‘통신사 제휴 카드를 만든 카드사가 마케팅 전략을 짠다’는 상황을 주고 데이터를 활용해 AI 모델링을 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코딩 초보라도 응시할 수 있는 초급 자격증부터 고급 코딩 능력이 필요한 중·고급까지 시험을 세분화했다.
비전공자인 시험 기획자들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다름 아니라 ‘용어’였다. 데이터를 다루는 데 있어 피처(요소), 레이블(결과값), 이진분류(binary classification) 같은 단어는 개발자에겐 익숙하지만, 비전공자들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녹여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유지영 과장은 “개발자들의 언어를 비전공자인 우리가 이해하는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을 몇 차례 겪기도 했다”며 “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교육 콘텐츠에서도 응시생들이 왜 이런 것을 배워야 하는지를 많이 고민했다”고 했다.
AIFB가 처음부터 비전공자를 위한 시험까지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KT의 사내 교육용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한양대·KAIST 등 대학들과 협업하면서 개발 방향이 바뀌었다. 이 상무는 “초급 시험은 파일럿 버전만 만들고 잠시 덮어두었지만, 의외로 비전공자 가운데 AI를 배우고 싶어 하는 수요가 많다는 것을 알게 돼 방향을 수정했다”며 “학생들의 호응이 좋아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이 상무는 “우리 내부에서도 시험에 탈락한 사람이 나올 정도로 시험의 ‘퀄리티’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준비했다”며 “산업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다양한 산업 분야의 AI 활용 사례를 시험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