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에 국기 보이라더니…유학생 사망에 난감한 중국

입력 2022-03-04 21:03
수정 2022-03-04 21:04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중국인 유학생 4명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중국 외교부가 "사실 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군에게 자국 국기를 보이라며 동맹 관계를 과시했던 중국 정부가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 4일 정례 브리핑에서 유학생 사망 보도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를 매우 중시하고 있으며 관련국에 확인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아직 철수하지 않은 교민에게 안전에 유의하고 위험한 상황을 피하라고 당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온라인매체 오보즈레바텔은 3일 러시아군이 하르키우의 한 대학 기숙사를 폭격해 학생 13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사망자 가운데 4명은 중국인, 1명은 인도인이며 중국인 사망자 중 2명의 이름이 '진티안하오(Jin Tianhao)'와 '리지(Li Zhi)'라고 전했다.

앞서 중국 대사관은 러시아군의 침공이 본격화된 지난달 24일까지도 교민들에게 "집에 머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안내하며 대피령을 내리지 않았다. 신체의 눈에 띄는 곳에 중국 국기를 부착하라는 '안전 수칙'도 발표했다. 자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러시아군에 보여주면 공격을 피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대사관의 공지에 우크라이나에서는 오성홍기가 동이 나는 상황도 벌어졌다. 사람들이 색연필과 립스틱 등을 이용해 오성홍기를 그리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웨이보에는 '우크라이나의 중국인이 립스틱으로 오성홍기를 그렸다'는 해시태그가 누적 조회수 2억회를 넘어섰다.

안전 수칙 내용이 알려지자 중국 대사관은 "신분이 드러나는 식별성 표식을 함부로 드러내지 말라"고 입장을 바꿨다. 자국 국기를 드러냈다가 분개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해코지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는 무역상, 유학생, 화교 등 6000여명의 중국인이 머물고 있었다.

중국은 지난 3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철군을 요구하는 긴급특별총회 결의안에서 기권하며 러시아와 돈독한 관계를 드러냈다. 193개 회원국 중 141개국이 찬성하며 결의안이 채택됐는데, 기권한 회원국은 35개국, 반개한 회원국은 5개국에 그쳤다.

지속적인 친러 행보에도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아 유학생이 사망하면서 중국 내에서는 반전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당초 러시아를 응원하는 게시물이 많았던 웨이보에선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무너진 대학 건물 사진과 유학생 사망 소식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러시아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