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發 곡물난…밀 이어 쌀값까지 불질렀다

입력 2022-03-04 17:08
수정 2022-03-05 00:51
우크라이나는 ‘세계의 곡창지대’로 불린다. 농경지 면적이 약 42만㎢로 한반도(약 22만㎢)의 두 배에 가깝다. 밀 수출량은 세계의 12%를 차지한다. 구로카와 유지 전 주우크라이나 일본대사는 우크라이나를 “21세기에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발생하면 그 위기에서 구해줄 나라”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의 곡물 생산 기능은 사실상 마비됐다. 이 여파로 밀과 옥수수 등에 이어 쌀 가격도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고공행진하는 곡물값
3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5월물 쌀(현미) 선물 가격은 100파운드(약 45.3㎏)당 16.36달러에 거래됐다. 1주일 전보다 6.1% 오른 것으로 2020년 5월 이후 최고가다. 쌀값이 급등한 것은 이미 폭등한 밀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보도했다.

같은 날 5월물 밀(소맥) 선물은 부셸(27.2㎏)당 1134센트에 손바뀜했다. 1주일 새 33% 치솟아 14년 만의 최고가를 찍었다. 옥수수 가격도 10년 만의 최고가를 기록했다. 옥수수는 4분의 3부셸당 7.66달러로 2.5% 올랐고, 대두(콩)는 0.6% 상승한 2분의 1부셸당 16.78달러에 거래됐다. 세계 밀 수출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29%에 달한다. 양국은 세계 옥수수 수출의 5분의 1을 담당한다.

곡물 가격이 급등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공급 우려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항구는 모두 폐쇄된 상태다. 이 나라 농부 대다수는 군에 징집됐고, 비료와 농약을 확보할 수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소비자의 장바구니 물가 부담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시리얼 브랜드 켈로그와 식품업체 제너럴밀스 등은 원가 부담을 덜기 위해 이미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곡물뿐 아니라 비료까지 거의 모든 것이 급등하면서 글로벌 물가가 치솟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물량 확보 나선 중국세계 각국은 서둘러 곡물 확보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미국산 옥수수와 대두 수입을 늘리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중국은 그동안 우크라이나로부터 옥수수와 보리를, 러시아에서 해바라기씨유를 수입했다. 브라질에서도 곡물을 수입할 수 있지만 브라질은 지난해 기상 악화로 생산량이 줄었다. 농업 정보업체 시토니아컨설팅의 다린 프리드리히스 공동 설립자는 “중국의 곡물 수급 상황이 매우 빠듯하다”며 “미국 서북부에서 대두 등을 수입하는 게 현재로선 최고의 선택”이라고 했다.

중국이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는 미국에까지 손을 뻗쳐 공격적으로 곡물 확보에 나선 것은 이번 곡물 공급난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보통 4~5월에 옥수수를 심는다. 밀의 파종도 봄에 이뤄진다. 현재 전쟁의 양상과 피해를 고려하면 공급망 정상화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급격히 늘어난 수요를 맞추기 위해 미국 농가들은 올해 밀 생산량을 크게 늘릴 것으로 관측된다. 분석정보업체 그로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미국의 옥수수 재배 면적은 작년 9340만에이커(약 37만㎢)에서 올해 9500만에이커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달 초 미국 농무부가 제시한 전망치보다 높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ADM), 번지 등 미국 대형 농업기업이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전망했다. 앨런 수더만 스톤엑스 원자재 이코노미스트는 “모두가 구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탄수화물을 사려고 한다”며 “세계 시장에서 밀 공급이 현저히 감소하면 쌀로 수요가 옮겨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