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서울 방화대교 인근에서 만난 차백성 작가(71·사진)는 푸른색 옷을 입고 헬멧과 고글을 쓴 채 그의 ‘애마’인 자전거 위에 올라타 있었다. 키 180㎝의 당당한 체격과 여유롭게 페달링하는 모습에서 연륜과 품격이 느껴졌다. 일흔이 넘은 나이임에도 주행 속도는 젊은이들과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자전거 여행가인 그에겐 자전거 바퀴를 대보지 않은 대륙이 더 드물다. 3000㎞ 거리에 달하는 미국 시애틀~샌디에이고, 홋카이도부터 규슈까지 일본 열도를 훑는 남북 코스, 남유럽 이베리아반도와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를 거쳐 뉴질랜드까지…. 그가 자전거를 타고 달린 거리만 10만㎞, 지구를 두 바퀴 돌고도 남는 거리다.
늦깎이 전업 여행가가 돼 ‘제2의 인생’을 산 지도 어느새 20년. 그동안 세계를 누비며 펴낸 여행기는 자전거 동호인들에겐 이미 필독서가 됐다. 그런 그가 최근 네 번째 여행기를 냈다. 코로나19 사태 전 북유럽 국가 7개국을 돌며 역사·문화를 탐방하고 사색한 기록을 담은 여행기 《자전거 백야기행》이다.
젊은이들도 어렵다는 국가 간 자전거 종주를 끊임없이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차 작가는 “나이가 들수록 체력은 점차 줄지만, 도전정신과 목적의식은 더욱 뚜렷해진다”며 “도전을 거듭할수록 여행기의 깊이가 더해져 계속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전거 여행은 ‘미지의 탐방’
그에게 여행은 여행할 국가와 장소를 고르면서부터 시작한다. 단순한 여행 기록을 넘어 독자들과 함께 사색할 수 있는 여행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가령 일본에서는 한국 역사와 관련한 장소 위주로 방문하는 식이다. 이렇게 여행 전 각 대륙에 맞는 테마를 정하고 사전에 관련 역사, 문화를 공부하는 데만 수개월을 보낸다고 한다.
여행지를 방문하면 현지인들과 나눈 대화와 감상을 빼곡히 메모한다. 자잘한 영수증도 그에겐 버려선 안 될 기록이다. 지역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은 필수 코스다. 특히 한국과 관련한 곳이라면 더욱 꼼꼼히 챙긴다.
“라트비아 카로스타의 한 박물관에 갔을 때였습니다. 이곳은 러일전쟁 당시 일본에 패한 러시아 발틱함대가 출정한 곳입니다. 한국의 운명을 가른 역사적인 곳이기도 한데 박물관장에게 물어보니 이곳을 찾은 한국인은 제가 처음이었다고 하더군요. 처음엔 관장이 저를 ‘승리의 역사에 심취한’ 일본인 학자인 줄 알아서 퉁명스럽게 대답했는데 한국인이라고 말하니 친절하게 설명해준 기억이 납니다.”
몇 달씩 이어지는 자전거 여행을 하다 보면 크고 작은 사고도 겪기 마련이다. 체인·타이어 등이 고장나거나 고가품을 노린 소매치기가 주변을 서성이는 일은 다반사다. 하루 수십㎞씩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면 온몸이 피곤해진다. 하지만 이런 모든 과정이 여행을 더욱 의미 있게 해준다는 게 차 작가의 설명이다.
“홀로 자전거 여행을 하다 보면 고단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혼자 여행 가면 무슨 재미냐고 제게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지의 두려움을 이겨낸 여행이 가장 오래 남는다고 저는 말합니다. 20년 전 미국을 종주할 때 만난 사람들과 나눈 대화, 그 사람들의 표정까지 아직도 생생합니다. 단순히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속의 과정을 모두 담는 게 자전거 여행의 본질이죠.” 대기업 뛰쳐나온 자전거 마니아차 작가가 자전거 여행을 ‘업’으로 삼은 것은 2000년 무렵이다. 그는 1976년 대우건설 공채 1기로 입사해 주요 직책을 거치며 상무까지 오른 성공한 ‘대우맨’이었다. 임원으로 승진해 직장인으로서 전성기를 달리던 때 사표를 냈다. 주변에선 모두 만류했지만 그에겐 여행가라는 오랜 꿈을 실행할 절호의 기회였다.
“한국에서 배낭여행 1세대로 꼽히는 분이 고(故) 김찬삼 교수입니다. 제가 중학생 때 이분의 책을 읽고 무척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자전거를 좋아했으니 자전거로 여행을 가보자는 생각을 했죠. 커가면서 꿈을 잊고 지냈는데 임원이 되면서 문득 ‘언제든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럴 바엔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자고 결심해 50세에 회사를 나왔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황망하게 떠난 아버지를 그리며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그는 늘 가슴에 품는 말로 ‘카르페 디엠(Carpe Diem)’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꼽는다. 각각 라틴어로 ‘이 순간에 충실하라’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다. 소중한 순간을 놓친 것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현재에 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게 그의 인생 철학이다.
코로나19로 오랫동안 해외 여행이 막혀 있지만, 차 작가는 이미 다음 여행기를 쓸 준비에 들어갔다. 여행지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반도로 정했다. 이미 여러 번 다녀온 곳이지만 여행기 집필을 위해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 후 한 번 더 방문한다는 것이다. 이베리아반도를 끝으로 2008년부터 시작한 여행기 연작도 완결짓는다는 계획이다.
“저는 여생이란 말 대신 후반생이란 말을 씁니다. 끊임없이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며 사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언젠가는 자전거를 타기 어려워질 날도 오겠지요. 하지만 그때가 되면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할 겁니다.”
글=배태웅 기자/사진=김범준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