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침략전쟁에 '反러 동맹'으로 맞선 초연결 세계

입력 2022-03-02 17:23
수정 2022-03-03 07:55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러시아가 침공한 뒤 미국 등 자유진영 국가들은 단 한 명의 군인도 우크라이나에 파병하지 않았다. 대신 러시아 경제를 그로기 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고강도 제재 카드를 빼들었다. 아울러 한 도시에서만 50만 명이 참가한 지구촌 곳곳의 대규모 반전시위, 기업과 문화·스포츠계까지 가세한 전방위 보이콧, 수십만 해커가 자발적으로 나선 사이버전(戰) 등 일찍이 볼 수 없던 국경 없고 민관 구분 없는 강력한 ‘글로벌 반(反)러 동맹’이 침략군을 옥죄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뜻밖의 선방을 하는 데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국민의 결사항전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쟁 초기 서방국가들은 전세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었으나, 젤렌스키의 결연한 항전 의지가 각국 정상들을 움직여 ‘스위프트(SWIFT·국제금융통신망)’에서 러시아 퇴출과 같은 경제 제재를 끌어냈다. 러시아 증권거래소 폐쇄에 이어 루블화 30% 절하, 기준금리 연 7.5%에서 연 20%로 인상,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채권값 50% 폭락 등으로 러시아 경제는 디폴트 위기로까지 몰리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을 더욱 괴롭히는 것은 지구촌 차원에서 러시아를 ‘왕따’시키는 대규모 반러 전선이다. 여기에는 SNS가 중심에 있다. 러시아군의 민간지역 무차별 폭격, 맨몸으로 탱크를 막아서고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하는 시민들, 전장으로 떠나는 아버지와 어린 딸의 눈물겨운 이별 장면, 파자마 차림으로 숨진 여섯 살 소녀 사진 등이 유튜브, 틱톡, 트위터, 레딧 등으로 전 세계에 중계되면서 보는 이들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SNS를 타고 전해진 러시아군의 잔혹행위와 우크라이나의 처절한 항전 모습에 글로벌 기업들까지 움직이고 있다. 애플은 러시아에서 제품 판매를 전면 중단했고, 볼보 GM 포드 등도 자동차 수출과 현지 영업을 멈췄다. 구글은 러시아군이 활용할 가능성이 있는 구글맵의 실시간 도로 상황 서비스를 차단했다. 또 메타(페이스북), 넷플릭스,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들은 러시아의 가짜뉴스 전파와 흑색선전을 저지하기 위해 러시아 내 서비스를 막고 있다. 전 세계 20만 명의 해커가 자원봉사하듯 모여 러시아 외무부와 모스크바 증권거래소, 러시아 최대 은행 웹사이트를 마비시키기도 했다.

탱크 전투기 포탄만 앞세운 푸틴은 이런 사태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쯤은 2~3일이면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초연결 시대의 ‘소프트 파워’가 그를 오판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은 총칼로만 싸우던 과거 전쟁과는 확연하게 다른 21세기 전쟁의 모델이 될 만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변치 않는 것이 있다. 자유, 민주, 인권, 평화와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는 전쟁 양상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굳건히 지켜야 할 가치로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