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억 아빠찬스로 77억주택 매입…강남서 위법의심거래 무더기 적발

입력 2022-03-02 13:55
수정 2022-03-02 14:02

서울 강남 등지의 고가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부친이 대표로 있는 법인의 돈을 사용하고 기업자금대출금을 전용하는 등 위법행위로 의심되는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국토교통부는 2020년 3월부터 작년 6월까지 전국의 9억원 이상 고가 주택 거래 7만6107건 가운데 이상 거래로 분류된 7780건에 대해 자금조달계획과 거래가격 등을 정밀조사한 결과 총 3787건의 위법 의심 사례가 적발됐다고 2일 밝혔다.

편법증여 의심 사례가 2248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어 계약일 거짓 신고(646건), 대출용도 외 유용(46건), 주택가격을 높이거나 낮춰 신고한 '업·다운계약'(22건), 법인자금 유용(11건), 법인 명의신탁(3건), 불법전매(2건) 등의 순이었다.

서울 용산에 있는 아파트를 77억5000만원에 매수하면서 64억원을 불법 증여받은 사례가 매수금액 기준 가장 고가였다. 30대 A씨는 용산의 한 아파트를 매수하면서 제출한 자금조달계획서에 12억5000만원에 대한 출처만 소명했다. 국토부가 A씨의 아파트 매입 자금 출처를 자세히 살펴본 결과 편법증여가 강하게 의심된다고 판단해 A씨의 거래 관련 자료 일체를 국세청에 넘겼다.

20대 B씨의 경우 부친의 지인으로부터 서울 소재 아파트를 11억4천만원에 매수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대금을 실제로 지급하지 않고 매도인의 채무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소유권을 이전했다. 매수인 B씨 대신 그의 부친이 채무 인수 등 모든 조건을 합의했고 B씨는 인수한 채무를 상환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부는 이 사례에 대해 명의신탁이 의심된다며 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명의신탁은 형사처벌 대상이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강남 소재 아파트를 29억원에 매수한 C씨는 부친이 대표로 있는 법인으로부터 6억9000만원을 조달했다. 법인자금유용과 편법증여 혐의로 국세청에 통보됐다.

적발된 고가 주택의 위법 의심 거래 대다수는 서울 강남권에 집중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 강남구에서 361건이 적발돼 가장 많았고, 이어 서울 서초구(313건)와 성동구(222건), 경기 성남시 분당구(209건), 서울 송파구(205건) 등의 순이었다. 지방에서는 대구 남구(133건)가 8위에 이름을 올렸다.

전체 주택거래량 대비 위법 의심 거래 비율도 높았다. 이 비율은 강남구(5.0%), 성동구(4.5%), 서초구(4.2%), 경기 과천시(3.7%), 서울 용산구(3.2%) 등의 순이었다.

편법증여 의심 거래의 경우 30대가 1269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40대 745건, 50대 이상 493건, 20대 170건 순이다. 미성년자 중 가장 어린 5세 어린이는 조부모로부터 5억원을, 17세 청소년은 부모로부터 14억원을 편법으로 증여받아 고가 주택을 매입한 정황이 포착됐다.

김수상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법인의 다주택 매수 행위나 미성년자 매수 및 부모-자녀 등 특수관계 간 직거래 등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기획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