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이야기꾼'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 떠나다

입력 2022-02-26 14:56
수정 2022-02-26 15:14

문화부 초대 장관을 지낸 한국 문화계의 거목 이어령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석좌교수가 26일 영면에 들었다. 향년 89세.

유족 측은 이어령 전 장관이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이날 밝혔다.

작가, 문학평론가, 교수 등으로 활약한 고인은 우리 시대 이야기꾼이자 최고 지성으로 꼽힌다. 문화의 힘을 일찌감치 강조하며 국가경쟁력 또한 문화경쟁력에서 비롯된다고 피력한 선지자였다. 경영과 문화의 접목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노태우 정부 당시 신설된 문화부 초대 장관(1990~1991) 재직 시절 재계 인사와 함께 기업문화창달에 힘을 쏟기도 했다.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호적상 1934년생)한 고인은 부여고를 나와 서울대와 동(同)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4세 ‘우상의 파괴’로 등단한 후 문학평론가, 언론인 등으로 활동했다. 1960년 서울신문을 시작으로 1972년까지 한국일보·경향신문·중앙일보·조선일보 등 논설위원을 역임한 당대 최고의 논객이었다. 1972∼1973년에는 경향신문 파리특파원으로 활동했다.

1966년부터 이화여대 강단에 섰다. 1989년까지 이화여대 문리대학 교수, 1995∼2001년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를 지냈고, 2011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됐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한국예술종합원(한예종)의 탄생을 이끌었다. 1988년에는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을 주관해 '굴렁쇠 소년'을 연출하기도 했다.

6공화국 당시 문화공보부를 공보처와 문화부로 분리함에 따라 1990년 출범한 문화부의 초대 장관을 맡았다. 이 같은 인연으로 지난해 10월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조시 '영전에 바치는 질경이 꽃 하나의 의미'로 그를 추모하고 국가장의 유족 측 장례위원을 맡은 바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으로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0)·'축소지향의 일본인'(1984)·'이것이 한국이다'(1986)·'세계 지성과의 대화'(1987)·'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달라진다'(1997)·'디지로그'(2006)·'지성에서 영성으로'(2010)·'생명이 자본이다'(2013)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고인은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은 후에도 집필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항암치료를 받는 대신 마지막 저작 시리즈 '한국인 이야기' 등 저서 집필에 마지막 힘을 쏟아부었다. 지난해 10월에는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장남 이승무 한예종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학교 교수가 있다. 장녀 이민아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지역 검사를 지냈으나 2012년 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유족 측은 5일간 가족장으로 치를 예정이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