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 한번 할 수 없는 '완벽주의' 스타…K팝 시장서도 통할까 [연계소문]

입력 2022-02-26 17:03
수정 2022-02-26 17:04

지난해부터 메타버스가 화두로 떠오르고 가상 인간이 등장하면서 함께 따라온 말이 있다. 바로 사고도 안 치고, 늙지도 않는 연예인이 나온다는 것. 처음에는 SNS 팔로워를 끌어모으며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불리던 이들이 이제는 본격적으로 연예계 진출을 선언하고 있다. 가장 먼저 표적으로 삼은 무대는 팬덤형 시장으로 굳혀져 가고 있는 가요계다.

최근 버추얼 인플루언서들이 줄줄이 가수 데뷔를 선언했다. 신한라이프 TV 광고로 얼굴이 잘 알려진 로지가 지난 22일 데뷔곡 '후 엠 아이(Who Am I)'로 먼저 출격했고, LG전자가 만든 김래아, 스마일게이트의 가상인간 한유아도 올해 데뷔를 예고한 상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버추얼 인플루언서 시장 규모는 오는 2025년 약 14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인간 인플루언서 시장 규모를 1조 원이나 넘어서는 수치다.

장밋빛 미래가 점쳐진 덕분인지, 버추얼 인플루언서들의 가수 데뷔에는 대형 기획사와 유수의 프로듀서들이 합류했다. 로지의 첫 번째 싱글 '후 엠 아이'에는 볼빨간 사춘기의 앨범 프로듀싱을 맡았던 바닐라맨 정재원이 참여했다. 김래아는 미스틱스토리 대표 프로듀서 윤종신이 직접 곡과 목소리를 프로듀싱한다. 한유아는 YG케이플러스와 전속계약을 체결, 음악 관련 업무는 CJ ENM이 맡는다. 그의 신곡에는 히트곡 메이커 박우상이 참여했다.


신인으로서는 이례적인 그야말로 '역대급' 지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확실한 대중성과 스타성만 장착한다면 가상 인간은 인적 리스크 발생이 없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한 현시점에서 초반 제작과 프로듀싱에 심혈을 기울여 선두를 점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미국의 가상인간 릴 미켈라는 대표적인 성공 모델로 꼽힌다. LA에 거주하고 있는 19세 브라질계 미국인으로 설정된 미켈라는 다수의 음원을 공개해 빌보드 차트 47위, 스포티파이 차트 8위의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300만 명 이상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한 그는 다수 브랜드의 광고 모델로도 활약, 2019년 한 해 수익만 14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여러 가요계 관계자들도 그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며 지속해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만, K팝에 도전장을 내민 가상 인간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팬덤을 위주로 성장한 K팝의 최근 성공 흐름을 봤을 때 실제 인간이 아닌 존재가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 따르는 것. 결국 가상 인간의 특성을 내세우면서도 인간다움을 쫓는 구조에서 벗어나긴 어렵다.

공개된 로지의 데뷔곡만 봐도 가상 인간으로 태어나 '나는 누구인가'라며 정체성 혼란을 겪는 자신을 인간인 MZ세대의 고민과 동일 선상에 두고 위로한다. 따뜻한 노랫말에 부드러운 멜로디까지 감성적인 면을 최대한 부각했다.


한유아가 공개할 데뷔곡 '아이 라이크 댓(I Like That)'과 관련해서도 CJ ENM은 "가상 인간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진정한 아티스트로 활동하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이 아니라서 갖는 강점이 있는 반면, 인간다움이 없어서 생기는 불확실성을 해소할 높은 완성도의 곡, 공감대를 이룰 메시지, 개성 있는 콘셉트 등을 고민하고 강조하는 분위기다.

가상인간 스토리를 노래에 녹이는 것은 앞서 그룹 에스파(aespa)가 성공시킨 사례가 있는데, 이는 실존하는 멤버들과 가상의 아바타 간 관계를 토대로 세계관을 전개해나가며 이질감을 최대한으로 좁힌 경우라 버추얼 아티스트들의 행보와는 차이가 있다. 또 에스파 등장 당시에는 메타버스, AI에 대한 개념에 희소성도 존재했기에 지금의 상황과는 비교가 어렵다.

팬들은 아티스트와의 대면을 중요하게 여긴다. 오프라인 콘서트는 물론, 대면 팬 사인회에서 눈을 맞추고 악수를 하는 등 인간적 교류에 큰 호감을 느낀다. 과연 우후죽순으로 가요계에 도전장을 던진 버추얼 아티스트들이 K팝 신에서 자신들만의 특징을 내세워 인간을 제치고 승기를 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