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목표 달성 시 금리 혜택…‘SLL’ 국내 첫선

입력 2022-03-15 06:02
수정 2023-08-08 13:02
[한경ESG] ESG NOW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잘하는 중소기업이 대출금리 감면을 받을 방법이 더욱 다양화되고 있다. 기업은행과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가 국내 최초로 지속가능성연계대출(SLL)을 선보였다. SLL이란 대출자의 ESG 경영 목표 이행 정도에 따라 은행이 금리를 조정하는 대출을 말한다.

신용보증기금은 최근 ESG 경영보증우대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중소기업을 위해 한두 가지 ESG 조건을 충족하면 보증비율 상향, 보증료 할인 등 혜택을 주는 상품을 마련했다. 기업은행·대한상의 SLL과 신보 ESG 보증은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K-ESG’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중소기업의 ESG 역량을 측정하는 특징이 있다.

국내 첫 SLL 대출

기업은행과 대한상의는 지난 2월 17일 ‘지속가능성연계대출 협력사업’에 대한 업무 협약을 맺고, 기업당 10억원 한도로 2000억원 규모의 ‘ESG경영 성공지원 대출’을 집행하고 있다.
이 대출을 받는 기업은 탄소배출량 감축, 여성 및 장애인 직원 확충 등 다양한 ESG 목표를 제시하고 달성도에 따라 대출금리를 할인받을 수 있다. 기업은 사전에 대한상의에 ESG 목표를 제출하고 인증을 받아야 한다. 기업은행은 ESG 최우수 기업에 1%포인트, 우수 기업 0.5%포인트, 양호 기업에 0.3%포인트의 금리를 할인해준다.

대출 만기 시점에는 대한상의가 기업의 ESG 이행 수준을 검증하고, 기업은행은 결과를 기반으로 금리를 재조정한다. 국내에서 금융사와 기업이 ESG 목표를 합의하고 이행 정도를 금리에 연동시키며, 제3의 기관이 평가하는 완전한 형태의 SLL이 출시되는 첫 사례로 평가된다.

기업은행 ‘ESG 경영 성공지원 대출’은 만기 연장 시 금리가 올라갈 수 있다. 첫해 1%포인트 금리를 감면받은 기업의 ESG 이행 정도가 떨어지면 이듬해에는 감면 폭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반대로 ESG 경영 수준이 높아지면 금리 인하 폭이 커진다.

국내 은행들은 수년 전부터 ‘녹색대출’ 등의 이름으로 ESG 우수 기업의 금리를 할인해주고 있다. 하지만 환경경영 인증서를 받은 기업, 자체 기준에 부합하는 기업에만 혜택을 줘 ESG 경영이 쉽지 않은 중소기업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기업은행 대출은 중소기업이 ESG 경영의 이행 수준을 높일 만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SLL이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기업들은 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K-ESG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및 에너지 사용량 감축(환경), 정규직 비율 확대(사회), 이사회 투명성 강화(지배구조) 등의 ESG 경영 이행 목표를 스스로 정한 뒤 목표를 달성하면 금융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ESG 경영 달성 여부에 따라 금리 감면에 차등을 두는 것도 국내 최초이고, K-ESG 가이드라인을 대출에 접목한 것도 국내 최초”라며 “인기가 높다면 판매액 2000억원을 증액할 계획도 있다”고 밝혔다.

지속적으로 ESG 수준 평가해

세계적으로 SLL의 출발은 2017년이다. ING은행이 신디케이션론 형태로 필립스에 10억 유로를 대출해주면서 ESG 경영의 이행 정도와 대출금리를 연동하는 계약을 맺은 것이 처음이다. 스페인 최대 은행인 BBVA는 2019년 멕시코 리츠(REITs, 부동산투자신탁)인 피브라 우노(Fibra Uno)에 9억9000만 유로 규모의 SLL을 집행했다. 그러면서 담보 부동산의 에너지 효율 지표와 금리를 연동하는 계약도 함께 맺었다. 계약에는 리츠가 담은 건물의 에너지 사용 효율이 나빠지면 은행이 금리를 올려 받겠다는 ‘마이너스 인센티브’가 포함됐다. ING·BNP 파리바·ABN 암로 등 서유럽 은행과 미쓰비시·미즈호·미쓰이스미토모 등 일본 은행들이 SLL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SLL 대출 연동의 기준은 기업의 ESG 등급, 에너지 사용률, 온실가스 감축량, 연료 및 물 사용 감축량, 자원 재활용 효율, 직원 교육 정도 등으로 다양하게 협의할 수 있다. 추후 ESG 외부 평가기관을 통해 대출 기업의 ESG 활동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SLL의 특징이다.

신용보증기금은 최근 중소기업이 한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도 다양한 보증 혜택을 주는 ESG 경영역량평가보증제도를 도입했다.

지난해 말 공개한 K-ESG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중소기업들의 ESG 역량을 측정한다. K-ESG 가이드라인은 ESG 각 분야별로 총 61항목을 측정하지만 중소기업 보증제도에 이를 직접 도입하긴 어렵다고 판단, 10개의 K-ESG 가이드 기반 ESG 보증상품으로 마련했다.

구체적으로 그린뉴딜, 에너지신산업협약, 신재생에너지협약, 녹색, 사회적경제기업, 수요·공급기업 공동 프로젝트, 중소기업 원부자재 공동구매협약, 트러스트온(Trust-on, 지급정보 신보 등록기업), 이지원(Easy-one, 온라인 비대면 활용), 상거래신용지수 우수기업 연계 등 분야별 10개 상품이다.

각 보증상품의 ESG 조건을 만족하면 대출금의 평균 85% 수준인 보증비율을 90%에서 최대 100%까지 올려주고, 대출금의 1% 수준인 보증료율도 최대 0.5%포인트 깎아준다.

신보는 ESG 경영이 우수한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심사 체계를 간소화하거나 유동화회사보증(P-CBO)을 요청할 때 우대해주는 혜택을 주기로 했다. 원하는 기업에는 ESG 컨설팅도 제공한다. ESG가 새로운 비즈니스 규범이라는 점을 중소기업도 인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ESG 수준을 전반적으로 높이려는 의도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