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급식업체 아워홈은 지난해부터 구내식당 사업소에 무인 도시락 자판기 ‘헬로잇박스’를 설치하기 시작해 1년여 만에 130여 개 사업소로 확대했다.
헬로잇박스는 냉장·냉동 도시락과 샌드위치, 샐러드, 과일 등을 판매하는 스마트 자판기다. 24시간 무인 운영이 가능해 대학병원과 기숙사처럼 늦은 시간에도 식사 수요가 있는 사업소에서 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아워홈 관계자는 “구내식당이 지니고 있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스마트 자판기를 통해 해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을 장착한 스마트 자판기가 국내 자판기 시장의 흐름을 바꿔놓고 있다. 커피와 캔·페트 음료, 위생용품 등을 판매하는 일반 자판기시장이 급속히 위축되고 있는 데 비해 신기술로 중무장한 스마트 자판기는 코로나19가 앞당긴 비대면 소비의 확산과 함께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도시락·고기까지 파는 스마트 자판기
23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스마트 자판기를 활용해 밀키트는 물론 정육 등 신선식품 판매에 도전하는 업체도 늘어나고 있다. 가정간편식(HMR) 업체 프레시고는 지난해 밀키트 스마트 자판기 ‘프레시고24’를 선보였다. 소비자가 자판기 냉장고에 카드를 꽂고 상품을 꺼내가면 자동으로 결제되는 시스템이다.
자판기를 운영하는 업주는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재고 관리와 내부 온도 체크, 고장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어 기존 자판기를 운영하는 것보다 편리하다.
편의점업계도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상품군을 확대하기 위해 매장에 스마트 자판기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미니스톱은 프레시스토어와 손잡고 정육 자판기를 일부 매장에 도입했다. 대형마트나 정육점이 문을 열지 않는 시간에도 신선한 돼지고기, 소고기 등을 구매할 수 있는 데다 소포장으로 구성해 1인 가구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자동판매기공업협회에 따르면 국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자판기는 20만여 대로 추정된다. 2000년대 초반에는 커피 자판기만 10만여 대가 넘었지만 지금은 6만여 대 수준으로 줄었다. 반면 스마트 자판기가 2만여 대로 늘어나면서 자판기 시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정원 한국자동판매기공업협회 회장은 “스마트 자판기의 확산으로 국내 자판기 시장은 변곡점을 맞았다”며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언택트 소비 문화가 확산됨에 따라 앞으로 자판기 시장은 더욱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통 자판기 급감에 제조사 영업 중단자판기를 생산하는 제조업체도 스마트 자판기 경쟁력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국내 자판기 시장의 60%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롯데기공은 커피, 캔·페트 음료 등을 판매하는 일반 자판기를 넘어 IoT 기술을 적용한 화장품 자판기, 펫푸드 자판기 등을 적극 개발해 선보이고 있다.
롯데기공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무인 판매가 늘어나면서 냉장·냉동 기능을 갖추고, 다양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스마트 자판기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자판기 시장의 변화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업체들은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롯데기공에 이어 시장 점유율 2위를 달리던 자판기 제조업체 로벤은 계속되는 실적 악화로 지난해 사실상 사업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캐리어 자판기 사업부를 인수한 로벤은 스마트 자판기로의 전환 대신 커피 등 일반 자판기에 주력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 자판기는 중고 제품을 양도양수하는 경우가 많아 신제품 수요가 크게 줄었다”며 “커피 자판기 등에만 집중해선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