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이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코로나 위기가 시작된 지 2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한국 자산의 상대적인 수익률이 낮아져 국내에서 해외로 자본이 유출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은행도 기준금리 인상 압력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간 경제 전문가들은 한은이 이미 작년 8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상해 왔기에 미 Fed의 금리 인상이 시작돼도 당장은 자본 유출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위기가 고조되며 상황은 달라졌다. 전쟁 발발 가능성으로 금·달러 등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위험자산으로 여겨지는 한국 주식이나 원화는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코스피지수는 2700선까지 하락했고 원·달러 환율은 코로나 위기 초반 이후 최고치인 1200원대에 근접했다. 이와 동시에 원유 등 에너지 가격은 빠르게 상승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고 있으며 시장금리 역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렇게 환율과 물가, 금리가 모두 치솟는 상황은 소위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초대형 복합 위기)’의 가능성을 높인다. 고환율과 고물가, 고금리가 개별적으로는 경제에 큰 위협이 되지 않더라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주는 초대형 위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환율 상승은 수입품 가격을 올려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에너지 가격 상승세도 가계의 물가 부담을 가중시킨다. 여기에 시장 금리마저 상승하면 자산 가격이 하락하는 가운데 가계의 대출이자 상환 부담은 더욱 늘어난다. 이는 가계대출 부실화를 초래해 경제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한 한국은행의 해법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일관된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해 민간의 기대인플레이션을 낮추는 것이다. 시장 금리는 인플레이션이 앞으로 상승할 것으로 기대될 때 상승한다. 시장 참가자들이 물가 상승에 대한 보상으로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미래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는 장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을 높이는 요인이기도 하다. 모든 조건이 동일할 때 기대인플레이션의 상승은 원화 가치의 하락을 의미하므로 달러 대비 원화의 가치 또한 하락하며 원·달러 환율을 높인다. 미래 물가 상승에 대한 기대는 또한 물가가 상승하기 전에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려는 수요를 늘려 현재의 물가 수준을 높인다. 결국 기대인플레이션을 낮춰야 시장 금리와 환율, 그리고 물가도 안정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17조원에 달하는 추가경정예산을 통과시키고 선거 이후 2차 추경을 준비한다는 정치권의 움직임은 우려스럽다. 물론 코로나 위기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비대칭적으로 크게 타격을 받은 산업에 대한 지원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동안 시장에 크게 풀린 유동성을 회수하기 위한 통화정책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확장 재정정책을 추진하면 물가상승 압력을 높여 긴축적 통화정책의 효과가 반감된다. 또한 향후 추경 집행을 위해 국채가 발행된다면 시장금리는 더욱 상승할 수 있다. 기대인플레이션을 낮추는 것이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하는 현 상황에서 재정은 거시경제 전반을 고려해 시행되는 통화정책을 보완할 수 있도록 취약계층에 대한 핀셋 지원에 집중돼야 한다. 기대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하면 환율, 금리, 물가의 동반 상승으로 인한 퍼펙트 스톰 가능성을 도려낼 수 없다.
이 과정에서 한은 통화정책의 독립성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지금처럼 국가부채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통화정책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국가부채의 실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라는 압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기축통화국인 한국은 통화정책의 독립성이 훼손되는 순간 국가 부도 위기가 현실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