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대통령선거에 이어 지방선거가 있다. 몇 군데 보궐선거도 함께 있을 예정이다. 선거제도를 민주주의의 꽃으로 또 절대선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유권자의 선호도를 온전히 담아낼 완벽한 후보는 있을 수 없기에, 선거 결과에 완전한 만족을 얻을 수 없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투표제도는 있을 수 없다는 ‘불가능성 정리’를 증명한 케네스 애로는 197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여기서 공정하고 합리적이라는 조건이나 증명은 엄밀히 수학적인 내용이지만, 투표나 선거제도가 불만스럽다는 데는 누구나 수학을 몰라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선거는 정치 과정의 일부분일 뿐이고,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끊임없이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필요하며, 국민 사이에 합의를 이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선거를 유권자 집단의 의사결정 과정이라고 한다면, 어떤 물체의 상태를 측정하는 과정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어떤 물체의 길이, 높이, 폭, 무게 등을 측정하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물리량을 읽어낼 따름이다. 그래서 측정하는 행위 자체가 물리량에 변화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물리량을 먼저 측정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길이를 먼저 측정하고 나중에 무게를 측정하든지, 순서를 바꿔서 하든지 결과는 똑같이 나온다. 케네스 애로 '불가능성 정리' 증명
그렇지만 선거는, 유권자들의 마음 상태나 바람을 있는 그대로 읽어내지 못한다. 잘못 만들어진 사지선다형 문제의 선택지처럼 정답스러운 후보자도 보이지 않는다. 후보토론회나 여론조사도 누가 어떤 질문을 먼저 받는지 등의 순서에 따라 여론 추이가 달라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여러 가능성 중 하나가 선택된다. 그렇게 선택된 결과는 한동안 유지된다. 이 같은 선거 과정은 앞에서 본 물체의 거시적 상태를 측정하는 것보다 물체의 미시적 양자상태 측정과 오히려 유사한 데가 있다.
가장 간단한 물체의 양자상태는 두 가지 상태만 가진 큐비트로 나타낼 수 있다. 디지털 정보 단위인 비트(bit)가 0 또는 1을 나타내는 데 비해, 큐비트(qubit·양자비트)는 0과 1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는 중첩상태에 있을 수 있다. 광자의 편광은 수평편광과 수직편광뿐 아니라 다양한 중첩이 가능하고, 전자의 스핀도 업(위), 다운(아래)뿐 아니라 다양한 방향의 중첩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렇지만 큐비트의 양자상태를 측정하면 항상 둘 중 하나만으로 선택된 결과가 나온다. 마치 법정에서 묻는 질문에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라는 것과 같다. 선거는 양자상태 측정과 유사업 스핀 전자의 스핀 방향을 측정할 때, 업이냐 다운이냐를 측정하면 100% ‘업’이라고 나온다. 그러나 이 업 스핀 전자에 대해 스핀 방향이 오른쪽이냐 왼쪽이냐를 측정하면, 완전히 불확정하게 돼 오른쪽과 왼쪽이 반반 확률로 나온다. 그리고 일단 오른쪽 스핀으로 측정된 전자의 스핀 방향에 대해 다시 오른쪽이냐 왼쪽이냐를 측정하면, 이제는 100% 확정적으로 오른쪽으로 나온다. 즉 처음에 업 스핀이었던 것이, 일단 오른쪽 스핀으로 측정되면서 그 상태가 달라진 것이다. 이를 양자측정에 의한 양자상태의 붕괴(collapse)라고 부른다. 측정 전의 양자상태가 측정 후에 달라졌기 때문이다.
‘붕괴(崩壞·무너짐)’라는 무시무시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측정에 의해 물체의 양자상태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1920년대 후반 당시 물리학자들에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현대 양자물리학이 성립되기 전에는 측정은 정해져 있는 물리량을 읽어낼 뿐이지 물리량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1905년 광전효과를 설명해 초기 양자물리학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까지 받은 아인슈타인은 양자측정이 양자상태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고,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면 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냐?’는 말까지 했다. 위에서 본 것처럼, 업·다운 스핀 측정을 먼저 하면 오른쪽·왼쪽 스핀 측정 결과는 완전히 불확정하게 된다. 이것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서 가장 간단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리고 어떤 양자측정을 먼저 하느냐에 따라 마지막 결과가 달라지는 맥락성(contextuality)이 있다. 양자물리학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의 대부분은 사실 양자측정이 가진 특성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특성들에 대해 계속 탐구한 덕택에 양자컴퓨터와 양자암호, 양자텔레포테이션 같은 양자정보과학이 발전하게 됐다.
선거가 양자물리학적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선택을 결정짓는 선거가 단순히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새로운 합의를 이뤄나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온 국민이 배우고 궁리하여 좋은 나라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김재완 고등과학원 부원장·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