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뒷걸음’…화석연료 의존 늘었다

입력 2022-03-15 06:02
수정 2023-08-08 10:01
[한경ESG] ESG NOW



지난해 석탄·액화천연가스(LNG) 등 화석연료를 활용한 전기 생산이 전년 대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원자력발전은 줄었다. 정부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2020년 10월에 처음 공개 선언한 이후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내뿜는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은 더욱 심해진 것이다. 정부가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원전의 순기능을 무시하고 탈원전 정책을 임기 말까지 밀어붙인 결과다. 한국과 달리 프랑스 등 세계 각국은 원전을 탄소중립의 주요 수단으로 보고 활용을 늘리고 있다.

석탄·LNG·석유 발전 모두 증가

한국전력이 지난 2월 11일에 발표한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총발전량은 57만6316GWh로 전년(55만2162GWh) 대비 4.4%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침체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회복되면서 전력 수요도 함께 늘어난 영향이다.

국내 전력 수요는 증가했지만 원자력발전은 2020년 16만184GWh에서 지난해 15만8015GWh로 1.4% 감소했다. 전체 발전량 가운데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29%에서 27.4%로 낮아졌다.

원전의 빈자리는 화석연료가 대체했다. 특히 LNG 발전량이 2020년 14만5911GWh에서 지난해 16만8262GWh로 15.3% 늘었다. 정부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낙인찍은 석탄화력발전 역시 같은 기간 19만6333GWh에서 19만7600GWh로 0.1% 증가했다. 유류(석유)를 활용한 발전은 2255GWh에서 2354GWh로 4.4%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석탄·LNG·유류 등 3대 화석연료를 활용한 발전 비중은 2020년 62.4%에서 지난해 63.9%로 높아졌다.

정부는 2050 탄소중립 선언 이후 화석연료 비중을 지속적으로 낮추겠다고 공언해왔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확정해 발표한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상향안을 통해 3대 화석연료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41.3%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NDC 상향안과 함께 발표한 탄소중립 시나리오 최종안은 2050년까지 석탄 발전을 모두 중단하고 LNG 발전 비중도 최대 5% 이내로 두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 같은 탄소중립 선언이 무색하게 화석연료 발전 비중은 오히려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원자력발전 대체 왜 줄었나

정부 의도와 달리 결과적으로 온실가스 다배출 에너지원에 대한 발전 의존도가 높아진 것은 탈원전 정책으로 빚어진 정부의 자가당착(自家撞着)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단기적으로 크게 증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원자력발전만 줄였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2020년 3만6527GWh에서 지난해 4만3085GWh로 17.8% 증가했지만, 절대적인 발전량 자체가 워낙 작아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원자력발전이 줄어든 이유에 대해 “작년엔 대형 원전이 안전을 위해 주기적으로 시행하는 계획예방정비 대상에 다수 포함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원전은 1년 6개월마다 핵연료를 교체하는 계획예방정비를 받는데, 이 과정에서 원전 이용률이 떨어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안전을 명분으로 원전을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멈춰 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국내 원전 이용률은 74.5%로 전년 대비 0.8%포인트 줄었고, 2015년(85.3%)과 비교하면 10.8%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의 원전 이용률은 2020년 기준 92.5%에 달한다.

심형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한빛4호기의 경우 2017년 5월 가동이 중단된 이후 4년 넘게 시간이 흐를 정도로 정비 기간이 비정상적으로 장기화하고 있다”며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수원의 독립성 훼손이 의심되는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탄소중립 위해 원전 늘린다는 EU·美

유럽연합(EU), 미국 등 세계 주요국은 원전을 확대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월 2일 원자력발전에 대한 투자를 친환경 활동으로 분류하는 녹색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에 포함시키는 규정안을 확정, 발의했다. 규정안은 2045년 이전에 건축 허가를 받고 2050년까지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분할 수 있는 국가에 짓는 원전에 대해서만 친환경으로 인정해주기로 했지만, 모든 원전을 친환경 녹색분류체계(K-그린 택소노미)에서 제외한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규정안은 또 27개 EU 회원국 중 20개국 이상이 반대하거나 EU 의회에서 353명 이상이 반대하면 부결될 수 있다. 하지만 부결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EU 현지 언론의 지배적 평가다.

EU 회원국 가운데 원전 증설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프랑스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2월 10일 “프랑스 원자력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겠다”며 2028년부터 신규 원전을 6기 더 짓겠다고 발표했다. 6기의 원전과는 별도로 8기의 원전을 추가로 짓는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다. 프랑스는 또 기존 원자로 수명을 40년에서 50년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취임 당시 프랑스의 원자력발전 비중을 75%에서 50%로 낮추겠다고 공약했지만 재생에너지로는 탄소중립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 원자력을 늘리기로 한 것이다.

미국도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선 원전이 꼭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는데, 이 행정명령은 원자력을 탄소중립 실현 수단인 ‘무공해 전력(carbon pollution-free electricity)’의 한 종류로 명시했다.

정의진 한국경제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