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며 미국 및 서방과 각을 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푸틴 대통령의 야망은 러시아에 굴욕감을 준 냉전 이후의 안보협정을 바로잡고 동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냉전시대 수준으로 회복하는 것이라고 21일(현지시간)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시아 지역인 돈바스의 분리독립을 선포하고 평화 유지를 명분으로 러시아군을 투입하기로 했다. 냉전 종식 이후 굳어진 유럽의 안보지도를 재편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밝힌 것이란 평가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에세이를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는 한 민족이고 모두 9세기 유럽 최대 국가 루스제국의 후손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지난 30여 년간 러시아가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받은 처우에 대한 불만도 쏟아냈다. 그는 “러시아는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보복 조치를 할 권리가 있다”며 “이게 바로 우리가 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금지하고, NATO군 배치를 1990년대 독일 통일 이전으로 되돌릴 것을 요구해왔다.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소련 붕괴 이후 영향력이 축소된 러시아의 지위를 되돌리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한다. 푸틴 대통령은 소련 붕괴를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언급하곤 했다. 옛 소련 정보기관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출신인 그는 소련이 무너지고 나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서방에 일방적으로 밀리는 것에 적지 않은 굴욕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메리 새롯 존스홉킨스대 역사학과 교수는 “푸틴은 소련 시대처럼 러시아 주변에 완충지대를 만들려 한다”며 “이를 통해 미국과 나란히 초강대국으로 복귀하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과 서방이 ‘돈바스 위기’에 책임이 없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소련 붕괴 직전 러시아 모스크바 주재 영국 대사로 근무했던 로드릭 브레이스웨이트는 “1990년대 서방의 외교는 거만하고 효율적이지 못했다”며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의 굴욕감과 NATO에 대한 인식, 우크라이나와의 역사적 관계 등은 러시아 국민 상당수가 똑같이 느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