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발레와 모던 발레 모두 잘 소화해야 세계적인 발레단이 될 수 있다. 21세기에 걸맞은 무용수를 발굴하겠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이 2014년 신임 단장으로 내정된 뒤 내건 최대 목표였다. 세계적인 발레리나에서 무용단장이 된 지 올해로 9년째. 지난 1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그는 “그때 세운 목표가 이뤄졌다”고 자평했다.
과대평가는 아니었다. 강 단장은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적 없는 신작을 꾸준히 선보였다. 첫해에는 독일 현대무용가 우베 숄츠의 ‘교향곡 7번’을 공연했다. 2016년에는 발레극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국내 관객에게 처음 소개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엔 발레극 ‘주얼스’ ‘해적’ 등의 신작을 무대에 올렸다. 대중성을 고려해 ‘백조의 호수’ ‘지젤’ 등 고전 발레극을 주로 올리던 관행에서 과감히 벗어난 것이다.
“예전보다 국내 관객의 수준이 높아졌어요. 매년 같은 작품을 반복해서 내놓으면 금방 질리겠죠. 단원들도 현대 작품과 고전 작품을 번갈아 연습해 몸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도록 판을 깔고 싶었습니다.”
강 단장은 안무가 양성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단원들이 직접 춤을 짜 무대에 올리는 ‘KNB무브먼트 시리즈’를 2015년 시작했다. 그해 국립발레단의 솔리스트 강효형이 처음 선보인 안무작 ‘요동치다’는 2017년 발레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당스’에서 안무가상 후보에 오를 만큼 호평받았다.
단원들이 안무한 작품 공연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공연한다. 강효형의 전막 발레극 ‘허난설헌’ ‘호이랑’ 등이 대표적이다. 영국 낭만 시인 바이런의 극시를 바탕으로 한 마리우스 프티파의 오리지널 버전을 국립발레단의 솔리스트 송정빈이 새롭게 탄생시킨 ‘해적’은 2020년 11월 초연한 데 이어 올해 다시 선보인다. 강 단장은 “KNB무브먼트 시리즈를 시작했을 때는 7년간 이어올 줄 몰랐다”며 “해외에 진출한 한국인 무용수는 많지만 안무가는 없다. 안무에 재능 있는 단원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발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립발레단은 올해 창단 6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선사한다. 오는 25~27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발레극 ‘주얼스’를 시즌 첫 작품으로 선보인다. 국립발레단이 지난해 10월 국내 초연한 주얼스는 신고전주의 발레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러시아 안무가 조지 발란신이 안무를 맡았다.
6월에는 국립극장에서 영국 발레의 대가 프레데릭 애쉬튼의 발레극 ‘고집쟁이 딸’을 국내 초연한다. 11월에는 현대무용 작품 세 편을 엮은 ‘트리플 빌’을 공연한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네덜란드댄스시어터(NDT) 등과 협업한 에드워드 클러그의 안무작인 ‘Ssss..’와 미국 현대무용가 윌리엄 포사이드의 ‘ArtifactⅡ’, 독일 안무가 우베 숄츠의 ‘교향곡 7번’ 등을 연달아 보여준다. 안무가들이 방한해 춤을 직접 지도할 예정이다.
고전 작품도 레퍼토리에 포함했다. 불멸의 발레극으로 꼽히는 ‘백조의 호수’는 10월, ‘지젤’은 11월, ‘호두까기 인형’은 12월에 무대에 올린다.
강 단장은 “국립발레단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감상할 수 있는 작품들을 선정했다”며 “코로나19 속에서도 단원들이 합심해 마련한 다양한 공연을 통해 많은 즐거움과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