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과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최초로 지속가능성연계대출(SLL)을 선보인다. SLL이란 대출자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목표 이행 정도에 따라 은행이 금리를 조정하는 대출을 말한다.
기업은행과 대한상의는 17일 중소기업의 ESG경영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지속가능성연계대출 협력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18일부터 기업당 10억원 한도로 2000억원 규모의 ‘ESG경영 성공지원 대출’을 집행하기로 했다.
중소기업은 탄소 배출량 감축, 여성 및 장애인 직원 확충 등 다양한 ESG 목표를 제시하고 달성도에 따라 대출 금리를 할인받을 수 있다. 기업은 사전에 대한상의에 ESG 목표를 제출하고 인증을 받아야 한다. 기업은행은 ESG 최우수 기업에 1%포인트, 우수 기업 0.5%포인트, 양호 기업에 0.3%포인트의 금리를 할인해준다.
대출 만기 시점에는 대한상의가 기업의 ESG 이행 수준을 검증하고, 기업은행은 결과를 기반으로 금리를 재조정한다. 국내에서 금융사와 기업이 ESG 목표를 합의하고, 이행 정도를 금리에 연동시키며 제3의 기관이 평가하는 완전한 형태의 SLL이 출시되는 첫 사례다. 기업은행과 대한상의는 중소기업의 ESG 교육 및 컨설팅 사업도 함께 벌이기로 했다. 기업은행, 中企 ESG 경영수준 높아질수록 대출금리 더 할인스페인 최대 은행인 BBVA는 2019년 멕시코 리츠(부동산투자회사)인 피브라 우노(FIBRA UNO)에 9억9000만유로 규모의 지속가능성연계대출(SLL)을 집행했다. 그러면서 담보 부동산의 에너지 효율 지표와 금리를 연동하는 계약을 맺었다. 계약에는 리츠가 담은 건물의 에너지 사용 효율이 나빠지면 은행이 금리를 올려 받겠다는 마이너스 인센티브가 포함됐다.
국내 최초의 SLL이라고 평가받는 기업은행 ‘ESG경영 성공지원 대출’도 만기 연장 시 금리가 올라갈 수 있다. 첫해 1%포인트 금리를 감면받은 기업의 ESG 이행 정도가 떨어지면 이듬해에는 감면 폭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반대로 ESG 경영 수준이 높아지면 금리 인하 폭이 커진다.
국내 은행들은 수년 전부터 ‘녹색대출’ 등의 이름으로 ESG 우수 기업의 금리를 할인해주고 있다. 하지만 환경경영 인증서를 받은 기업, 자체 기준에 부합하는 기업에만 혜택을 줘 ESG 경영이 쉽지 않은 중소기업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기업은행 SLL은 중소기업이 ESG 경영 수준을 높일 만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기업들은 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K-ESG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및 에너지 사용량 감축(환경), 정규직 비율 확대(사회), 이사회 투명성 강화(지배구조) 등의 ESG 경영 이행 목표를 스스로 정한 뒤 목표를 달성하면 금융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ESG 경영 달성 여부에 따라 금리 감면에 차등을 두는 것도 국내 최초이고, K-ESG 가이드라인을 대출에 접목한 것도 국내 최초”라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에서 금융회사가 집행한 SLL은 총 1195억달러 규모로 금융사들이 집행한 전체 대출 규모로 보면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기업은행 외 신한은행 등 다른 은행들도 SLL 출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훈/박진우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