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색보다 빛난 곽윤기의 '라스트 댄스'…MZ세대 홀린 리더십

입력 2022-02-17 15:44
수정 2022-02-17 17:10

16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0m 결승전에서 두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한 '맏형' 곽윤기(33)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이후 12년만에 메달을 따낸 빛나는 레이스였지만 "동생들에게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의 '라스트댄스'는 메달 색깔을 넘어서는 큰 감동을 만들었다.

18살에 처음 태극마크를 단 곽윤기는 15년간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체력소모가 크고 경쟁이 치열한 쇼트트랙에서 철저한 자기관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꿈 많은 소년이었다. 주니어로서 쇼트트랙에서 두각을 드러내면서 "'쇼트트랙의 레전드'로 불릴만한 업적과 이력을 이룬 선수가 되고 싶었다는 꿈을 늘 가슴에 품고 있었다"고 한다. 2007년 18살에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그는 "그런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조금 일찍 깨달았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이후였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곽윤기는 포기하지 않았다. 최고 대신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온리 원 플레이어'가 되는데 집중했다. 164cm의 단신에 호리호리한 몸은 자리 선점을 위한 치열한 몸싸움에 취약했다. 그는 기술을 활용해 자신의 체격을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덩치가 큰 다른 선수들은 시도도 못할 비좁은 공간을 작은 신체를 활용해 자유롭게 파고 들었다. 몸이 가벼운 점을 활용해 순간 가속도를 키우고 방향을 자유자재로 트는 기술을 익혔다. 그의 인코스 추월 능력은 세계 최정상급이다.

그가 15년간 각종 대회에서 따낸 메달은 금메달을 포함해 총 24개에 이른다.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다. 2010년 밴쿠버 대회에서 남자 계주에 팀 막내로 참가해 은메달을 수확했다. 이후 2012년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히던 때에 발목이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올림픽 선발전까지도 부상이 회복되지 않으며 소치대회는 출전조차 못했다. 2018년 평창 대회 계주에서는 준결승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울정도로 역주를 펼쳤지만 결승에서는 후반에 임효준(중국명 린샤오쥔)이 넘어지면서 4위에 그쳤다. 그의 마지막 올림픽 도전이었던 이번 대회에서 은메달이라는 쾌거를 거두고도 못내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던 이유다.

하지만 그는 금메달 이상의 리더십으로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을 이끌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안팎으로 적잖은 진통을 겪은 쇼트트랙 대표팀을 김아랑과 함께 적극적으로 추스렀다. 호흡을 맞출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여자계주팀에게 특강을 열어 자신의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했다. 개막식에서는 김아랑(27)과 기수를 맡아 익살스럽게 입장하며 흥을 돋웠다.

대표팀 감독이 없는 상황에서 후배들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 대회 초반 중국에 치우친 편파판정에 팀 사기가 꺾이자 앞장서서 비판에 나서 후배들의 사기를 높였다. 곽윤기의 소신발언은 외신들도 주목하며 편파판정에 대한 여론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여자계주 경기를 앞두고 불안해하던 최민정(23)에게는 "내가 가진 모든 기운을 주겠다"며 다독였다고 한다. 곽윤기는 남자계주 경기가 끝난 뒤 "최민정에게 '기를 돌려달라'고 했는데 여자 1500m가 남자 계주 뒤에 있어서 돌려받지 못했다. 그래서 은메달에 그친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남자 계주 결승전을 앞두고는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겠다. 후배들은 올림픽을 충분히 즐겨줬으면 좋겠다"며 든든한 모습을 보였고 마지막 주자로서 값진 은메달을 수확해냈다.



실력과 끼, 든든한 리더십을 갖춘 곽윤기에게 MZ세대들도 열광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 전 17만여명이 구독하던 그의 유튜브 채널 '꽉잡아윤기'는 17일 오전 단숨에 구독자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결승전 직후 진행한 라이브방송에는 10만명이 동시에 몰려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날 결승전 뒤에 열린 간이 시상식에서 곽윤기는 더이상 실망한 표정이 아니었다. 특유의 밝은 표정으로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 안무를 선보이며 은메달을 자축했다. 곽윤기는 다음달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을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내려놓는다. 빙상에서의 '라스트 댄스'는 끝났지만 인간 곽윤기가 보여줄 댄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