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 논란에다 납득하기 어려운 ‘짠물 판정’으로 얼룩진 무대…. 그러나 유영(18)과 김예림(19·사진)의 비상은 눈부셨다. 이들은 지난 15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각각 6위와 9위에 올랐다. 한국 피겨의 새로운 희망을 밝힌 이들이 17일 프리스케이팅에 나선다. 실수 없이 ‘클린’ 연기에 성공한다면 ‘피겨 여왕’ 김연아(32) 이후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유영은 쇼트프로그램에서 기술점수(TES) 36.80점, 예술점수(PCS) 33.54점을 합쳐 70.34점을 받았다. 첫 점프인 트리플 악셀에서 착지에 성공하며 깔끔하게 연기해냈고,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도 클린 처리했다. 유영은 플라잉 카멜 스핀과 레이백 스핀에서 우아한 연기를 보이며 최고 난도인 레벨4를 받았다.
하지만 이날 유영의 연기에 매겨진 점수는 지나칠 정도로 박했다. 실수 없이 깔끔한 연기를 펼쳤지만 개인 최고점인 78.22점에 크게 못 미치는 점수가 나왔다. 첫 점프인 트리플 악셀은 안전하게 착지하며 깔끔하게 수행했지만 2.31점에 그쳤다. 회전 수가 부족했다는 이유에서다. 쇼트 4위를 기록한 알렉산드라 트루소바(18·러시아올림픽위원회)는 첫 점프인 트리플 악셀에서 넘어졌는데도 유영보다 높은 3.2점을 챙겼고, 2위 안나 셰르바코바(18·러시아올림픽위원회)는 첫 점프로 더블 악셀을 수행하고도 유영보다 높은 4.29점을 받았다.
세계 피겨스케이팅계는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 선수들에 대한 후한 평가와 아시아 선수들에 대한 박한 평가가 관행처럼 이뤄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짠물 판정’에도 유영은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트리플 악셀에서 회전이 부족했지만 넘어지지 않고 잘 착지한 것 같다. 그 점에는 만족하고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연습 때처럼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예림은 TES 35.27점, PCS 32.51점으로 67.78점을 받았다. 레전드 김연아가 직접 추천해준 ‘사랑의 꿈’ 선율을 배경으로 첫 번째 연기 과제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큰 실수 없이 수행했다. 러츠 점프에서 어텐션 판정을 받았지만 이어진 더블 악셀을 클린 처리했다. 이후 플라잉 카멜 스핀을 흔들림 없이 수행하며 레벨4를 받았다.
‘피겨 요정’에서 ‘약물 요정’으로 전락한 카밀라 발리예바(16)는 TES 44.51점, PCS 37.65점 등 합계 82.16점을 기록했다. 자신의 시즌 최고점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점수였지만 다른 선수들에 비해 후한 평가를 받았다. 첫 점프인 트리플 악셀에서 축이 흔들리고 두 발로 착지했지만 5.26점을 받았다. 발리예바는 지난해 12월 러시아에서 열린 러시아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실시한 도핑 검사에서 흥분제 역할을 하는 트리메타지딘 양성 반응이 나왔지만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서 구제받아 정상적으로 출전했다.
논란과 잡음을 뒤로하고 유영과 김예림은 다시 한번 날아오를 채비를 하고 있다. 올림픽 피겨 프리스케이팅에 한국 대표 2명이 톱10으로 진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선수가 실수 없이 클린 연기에 성공한다면 남자 싱글에서 차준환(21)이 기록한 ‘톱5’도 기대해볼 수 있다. 한국 피겨 여자 싱글은 김연아가 2010년 밴쿠버 대회에서 금메달, 2014년 소치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고, 2018년 평창 대회에서는 최다빈(22)이 7위를 기록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