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예상일(16일)이 임박한 가운데 러시아가 서방 국가와 사태 해결을 위한 협상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역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포기할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점에서 일촉즉발의 위기는 모면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등이 이날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회의를 열어 당장 군사적 행동보다는 서방과 추가 협상을 이어나가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는 러시아 국영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이 자리에서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서방 국가가 러시아의 주요 안보 요구를 거부하고 있지만 미국 등과 추가 대화에 나서야 한다”며 “협상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협상이 무한정 계속될 순 없더라도 현재 단계에서 이를 계속 강화해나갈 것을 제안하고 싶다는 뜻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에 대해 “좋다”고 대답해 모호하지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의 핵심 요구사항 가운데 하나인 NATO 가입을 포기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NYT는 분석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NATO 가입은 국가 안보를 위한 조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꿈과 같은 일”이라고 언급했다는 것이다. 그가 “NATO 가입은 헌법에 명시된 내용”이라고 강조해 실제로 포기한다는 뜻인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전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대화 여지를 남겨둔 것에 주목한다면서도 “긴장 완화를 위한 추가 조처가 필요하다”고 응수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우리는 라브로프 장관의 발언에 주목하지만 긴장 완화를 위한 가시적이고 실질적인 징후를 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긴장이 다소 완화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15일 우크라이나 접경 지대에서 훈련을 마친 일부 부대가 이날부터 원주둔 기지로 복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에 유럽 증시는 이날 일제히 상승세로 출발했다. 개장 전 미국 증시 3대 지수 선물도 반등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막으려는 국제사회의 외교적 노력도 지속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전화 통화로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날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한 뒤 15일엔 러시아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나 해법을 논의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15일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해 NATO 지도자들과 대책을 검토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 및 날짜를 예측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날짜는 16일로 거론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에 대해 공식 확인을 하지는 않았지만, 15일자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있는 대사관을 폐쇄하겠다고 밝히는 등 신빙성을 높였다. 이와 관련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4일 대국민 영상 연설에서 “그들은 16일이 (러시아가) 공격하는 날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며 “우리는 이날을 단결의 날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그의 발언이 전해지자 국제 유가는 급등했다. 뉴욕선물거래소에서 3월물 서부텍사스원유(WTI)는 2.53% 오른 배럴당 95.46달러에 마감했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브렌트유도 3.31% 상승한 배럴당 94.44달러를 기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의 군사적 의도에 대한 추측을 조롱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시장의 혼란이 가중됐다”고 분석했다. 로이터통신은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이 ‘군사 행동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D데이는 결국 최종 결정권자인 푸틴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고 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