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4일 “국민통합 정부에 필요하다면 ‘이재명 정부’라는 표현도 사용하지 않겠다”며 국민통합 의지를 강조했다. 대선 공식 선거운동 개시를 하루 앞두고 중도층 확장에 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기업인들과 대담을 하는 등 정치색은 배제한 채 ‘실력 있는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강조했다는 분석이다. 李 “5년 전 박정희 참배 거부했지만…”이 후보는 이날 서울 명동길 명동예술극장 사거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국회의원 0선의 이재명이 거대 양당 중심의 여의도 정치를 혁파하고 국민주권주의에 부합하는 진정한 민주정치를 만들겠다”며 “비례대표제를 확대하고, 이를 왜곡하는 위성정당은 반드시 금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집권 후 문재인 정부 수사’ 발언과 정권교체론을 견제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이 후보는 “이번 대선을 통해 대한민국이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국가 발전을 앞당기는 유능한 민주국가가 될지, 복수혈전과 정쟁으로 지새우는 무능한 검찰 국가가 될지 결정된다”며 “모든 변화는 선이 아니고, 묻지마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치교체, 세상교체가 국민에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후보의 통합 행보는 민주당 안에서도 강경 진보 성향을 보인 2017년 대선 경선 당시와도 달라진 모습이다. 그는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 이승만 전 대통령 묘소를 순서대로 참배했다. 19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 매국세력의 아버지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사 쿠데타로 국정을 파괴하고 인권을 침해했던 그야말로 독재자”라며 이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의 묘소는 방문하지 않았다.
이 후보는 과거와 달리 두 대통령 묘소에 참배한 이유에 대해 “5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저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감도 많이 바뀌고 커졌다”며 “국민의 대표가 되려면 특정 개인의 선호보다는 국민 입장에서, 국가 입장에서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한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지금은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기업인에게는 “트럼프식 규제 완화도 고려”통합과 경제 회복을 강조하는 이 후보의 메시지는 이날 오후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경제인 정책 대화에서도 이어졌다. 이 후보는 “시장을 이기는 정부도 없고, 정부 정책에 역행하는 시장도 존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업 규제 완화와 정부의 대규모 투자 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 의지도 강조했다. 이 후보는 “신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기업의 대대적 투자를 끌어내면 여러 영역에서 4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며 “규제 완화 샌드박스와 기업자율특구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내세웠던 ‘2-포(for)-1 룰’(규제 1개를 신설할 때 기존 규제 2개를 폐지하는 원칙)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진영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생각도 드러냈다. 이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토목건설은 진보의 금기였다. 하지만 그 금기를 깨겠다”며 “교통 체증을 해소하고, 시간과 거리를 단축할 수 있는 토목건설에는 과감하게 투자하고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에 대해서는 “출퇴근 지옥을 해소하는 GTX는 교통 문제뿐만 아니라 환경적 요인도 있다”며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제 활성화+부동산 안정’으로 중도 구애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이 후보의 통합 메시지가 중도층 유권자 공략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이 후보는 과반에 가까운 득표로 경선을 통과했지만 강성 친문(친문재인)을 비롯한 당내 전통 지지층과 중도층에게 인기가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 중 친문 지지층이 윤 후보의 ‘적폐 수사’ 발언으로 결집한 만큼 중도층 공략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분석이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이 후보가 경제를 활성화하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실력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전략을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 후보는 이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 최종본에 탈모치료약 건강보험 적용 확대와 임기 내 코스피지수 5000 달성 등을 추가했다. 이들 공약은 당초 선관위에 제출하기로 한 공약집 초안에 빠져 있어 ‘말바꾸기 논란’이 제기됐었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