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근 前 고법 부장판사 "과도한 배임수사, 기업 창의적 투자 위축시켜"

입력 2022-02-14 17:12
수정 2022-02-15 00:23
“과거에 얽매이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죠. 30년 판사 경험을 바탕으로 변호사로서 새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임성근 전 고등법원 부장판사(58·사법연수원 17기·사진)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이끈 사법부의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돼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 청구된 판사다. 그런 그가 법무법인 해광의 대표변호사로 ‘인생 2막’을 시작한다.

14일 서울 서초동 해광 본사에서 만난 임 대표는 “30년간의 판결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에 다양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변호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수사당국에서 배임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 기업의 창의적 투자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법리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판사, 판결에 무한책임 져야”임 대표는 국회의 탄핵 소추안 가결 직후인 작년 2월 28일 임기 만료로 퇴직했다. 이후 헌법재판소는 작년 10월 국회가 청구한 탄핵청구 심판을 기각했다.

임 대표는 사법농단 재판개입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기소됐지만 1, 2심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이 상고해 현재 대법원에서 사건을 심리하고 있다. 임 대표는 “오랜 기간 몸담은 법원을 떠나며 법원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심려를 끼쳐서 송구하다”고 말했다.

판사 30년 생활의 소회도 밝혔다. 임 대표는 “1991년 판사생활을 시작했을 때 판사 수가 100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3000명으로 늘었고 근무 여건도 이전보다 좋아졌다”며 “하지만 그만큼 법원에 대한 국민의 존경과 신뢰도 향상됐는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했다. 그는 “판사 출신으로서 아쉬움과 책임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임 대표는 판사 시절 해당 분야의 ‘이정표’ 역할을 한 판결을 여럿 내렸다. 대표적 판결이 2008년 옥션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2010년 키코(KIKO) 소송이다.

판사봉을 잡았던 임 대표는 두 재판에서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들과 키코 계약으로 손해를 본 기업에 대해 패소 판결을 내렸다. 개인정보 유출의 경우 “옥션 측이 보안사고 방지를 위해 정보통신망법에서 정한 의무를 다했다”고 판단했다.

키코 판결에서도 “키코 가입으로 손해를 본 회사가 기회비용을 상실한 것은 맞지만 불합리한 피해를 본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이후 고법과 대법에서도 인용됐다. 임 대표는 “판사는 자신의 판결에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며 “항상 내 판결이 상급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사표를 낼 각오를 했다”고 돌아봤다. 판사에서 변호사로그는 법무법인 해광의 대표변호사를 맡게 됐다. 작년 3월 설립된 해광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이동근 대표변호사(22기),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를 거친 서민석 대표변호사(23기),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최창영 대표변호사(24기)를 주축으로 한다.

서울·대구·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대표들에 더해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임 대표까지 합류해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임 대표는 “작년에 검찰 조사와 재판까지 겪으면서 당사자가 돼 법률 서비스를 체험해봤다”며 “법률적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사건을 해결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 대표는 특히 개인적으로 배임에 대한 법리 연구를 지속할 계획이다. 그는 “배임은 경영상의 판단과 경계선에 있는 경우가 많다”며 “배임을 신중하게 적용하지 않으면 기업가정신을 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액수 등에 근거해 기계적으로 형을 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아무리 판결이 옳다고 해도 기계적 양형은 견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이 기업에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최진석/사진=김범준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