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한테 후한 이는 남한테 베풀기 어려운 법입니다. 떠나기 전에 수중에 있는 것을 모두 주고 떠나야지요. 살던 집까지도 제가 내놓고 기부한 이유입니다.”
지난 9일 고려대에 10억원을 장학금으로 전달한 유휘성 전 조흥건설 대표(84·사진)는 기부한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제 기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평소에도 근검절약을 실천하면서 택시조차 잘 타지 않는다는 유 전 대표의 79m² 아파트에는 작은 TV, 침대, 소파와 같은 단출한 살림살이가 전부였다.
한때 중소 건설업체 대표로 지내던 그가 모든 것을 정리하고 10년 넘게 70억원이란 거액을 기부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기자와 만난 유 전 대표는 “떠날 때는 미련 없이 모든 것을 두고 떠날 수 있어야 한다”며 “그저 과거 저처럼 돈이 없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기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유 전 대표는 1958년 고려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1970년 조흥건설을 창업해 대표로 지내다 2008년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2011년부터 시작해 유 전 대표가 고려대에 기부한 금액은 74억원에 달한다. 고려대는 이를 ‘인성장학금’으로 운영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생활 자금을 보태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국민포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어린 시절 가난했던 기억이 기부하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유 전 대표는 6·25전쟁 때 피란을 떠나 피란지의 빈집 메주를 훔쳐 가족에게 갖다줄 정도로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장날이면 천안과 진천을 오가며 석유를 팔기도 했다. 공부에 재능이 있었지만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방황했고, 고3 2학기 무렵엔 학업을 그만두고 가출해 ‘토굴집’에서 기거하기도 했다고 한다.
“가출하고 대전에서 어머님 지인이 운영하는 여관에서 한동안 일하며 지냈습니다. 수소문 끝에 절 찾아낸 작은아버지가 펄쩍 뛰며 첫 학기 분이라도 내주겠다며 어렵사리 돈을 모아주신 덕분에 겨우 고려대에 합격할 수 있었죠. 대학생 시절에도 과외를 한 돈으로 근근이 학교에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기억 때문인지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의 사연이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집니다. 학업을 무사히 마치고 번듯한 사회인이 된 친구들이 제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할 때면 무척이나 뿌듯합니다.”
그는 2017년엔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있는 175㎡ 아파트마저 기부하고 현재 성북구 월곡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오랜 세월 살던 집까지 떠나보내면서 그가 기부정신을 실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 전 대표는 “불가(佛家)에서는 사람이 성불하기 위한 계율을 가르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기부를 실천하는 ‘보시’”라며 “미국이 오늘날 부강한 국가가 된 것도 워런 버핏, 빌 게이츠와 같은 거물들이 앞서서 기부하는 문화를 만든 것이라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 전 대표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남은 재산을 모두 정리해 마지막까지 기부할 것”이라며 “후배들도 이런 기부정신을 함께 실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