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전 6시 서울 양재동 aT화훼공판장(양재꽃시장)의 생화도매시장. 졸업·입학식 시즌을 맞아 꽃을 사러 온 손님으로 붐벼야 할 시장에 손님보다 상인이 더 많았다. “코로나19 창궐 후 세 번째 맞는 이번 시즌도 특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게 이곳 상인들의 공통된 얘기였다. 손님 끊기자 상인도 떠나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 여파로 올해도 졸업식을 취소하거나 학부모 참석을 자제시키는 학교가 속출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일선 학교에 졸업식을 소규모로 하거나, 자제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꽃장사를 하는 상인들의 한숨은 깊어지는 실정이다. “양재꽃시장에서 7년째 일하고 있다”는 이상욱 씨(65)는 “최근 3년간 2월 졸업·입학 시즌 매출은 코로나가 퍼지기 전인 2019년과 비교해 절반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꽃을 파는 사람들은 2월과 5월에 번 돈으로 1년을 먹고사는 경우가 많은데, 수년째 졸업식이나 각종 행사가 위축돼 큰일”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거래량도 급감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화훼사업센터 자료에 따르면 양재꽃시장에서 졸업식 꽃다발에 많이 쓰이는 장미 프리지어 등 절화(꺾은 꽃)는 2019년 2월 171만 단이 거래됐는데, 지난해 2월에는 거래량이 149만 단으로 12.8% 줄었다.
생업을 이어가기 힘들 정도로 벌이가 나빠져 일터를 떠나는 상인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 도봉구에서 9년째 꽃가게를 운영하는 권순흠 씨(62)는 “예전엔 2월 한 달 동안 1000만~1500만원까지도 매출을 올렸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엔 300만원을 밑돌고 있다”고 말했다. 권씨는 “이러면 남는 돈이 없다”며 “주변 상인들은 두 명 중 한 명꼴로 업종을 바꿨다”고 덧붙였다.
올 들어 거래 위축 요인 중 하나로 떠올랐던 1월의 가격 급등은 다소 진정됐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화훼농가의 인력난에 지난해 말 한파로 인한 작황 부진이 겹쳐 장미 평균 경매가는 지난달 5일 속당 2만원 넘게 치솟았다. 이달 9일엔 9000원 밑으로 떨어졌다. 이벤트가 있어야 팔리는데…예식 간소화, 인구 감소 등의 여파로 코로나19 확산 이전부터 화환 수요는 줄어드는 추세였다. 2016년부터 시행된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도 꽃시장엔 악재였다.
여기에 코로나19가 ‘결정타’를 날렸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화훼농가 재배 면적은 2012년 6329㏊에서 2020년 4299㏊로 32% 감소했다.
2010년 1만6000원을 넘었던 1인당 연간 화훼 소비액은 2020년 1만1676원으로 27.0% 떨어졌다. 양재꽃시장의 한 상인은 “원래도 사양산업이었는데 잇단 졸업식 취소가 세게 한 방 먹였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대책을 내놓기는 했다. 농식품부는 ‘2022~2026년 제1차 화훼산업 육성 종합계획’을 지난해 발표하면서 “다양한 소비 환경을 조성하는 등 꽃을 사치품으로 여기는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판로 지원을 다양화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현장 반응은 냉랭하다. 우리나라의 꽃 소비 패턴상 졸업식 같은 이벤트가 있어야 소비가 이뤄지기 때문에 정부 대책이 근본적 해결책이 되긴 어렵다는 반응이다. 화훼업계 관계자는 “일상에서 꽃이 사용되는 것은 선물용과 경조사용이 대부분”이라며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돼 졸업식 결혼식 등이 정상화되지 않는 한 상인들의 시름은 계속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