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안철수 단일화, 악마는 디테일 속에 있다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2-02-11 08:54
수정 2022-02-11 08:57

‘3·9 대선’이 한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후보 단일화가 최대 이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단일화 할 건지,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할 건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여당에서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 후보 간 단일화 군불을 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성사 가능성 보다는 윤 후보와 안 후보가 손을 잡는 것을 견제하려는 성격이 짙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단일화가 더 절실한 것은 국민의힘이다. 윤 후보의 지지율이 이 후보와 박빙을 보이고 있다.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를 자신할 수 없는 한 결국 안 후보를 끌어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역대 대선을 보면 2007년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타 후보에 비해 지지율이 월등하게 앞선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단일화가 대선판을 크게 흔들었다.

단일화 방법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997년 김대중-김종필 후보간 이른바 ‘DJP 연합’과 같이 후보 간 결단에 의해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것과 여론조사 결과 승자가 단일 후보가 되고 패자는 탈락하는 것 등이다. 윤 후보는 후보 간 담판을 통한 단일화를 언급했다. ‘DJP 연합’과 같은 것이다. 국민의힘에선 ‘윤 후보 대통령-안 후보 총리’시나리오가 돌고 있다.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 후보 결정은 시간이 촉박한데다 지루한 밀고 당기기로 자칫 표심을 잃을 수 있다는 게 윤 후보 측 주장이다.

안 후보로선 서두를 이유가 없다. 민주당으로부터도 러브콜을 받는 마당에 몸값을 잔뜩 올려 놓은 다음 협상에 나서도 손해볼 것이 없다. 연일 단일화에 선을 긋는 이유다. 그러나 국민의당 내부적으로는 단일화가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적지 않다. 안 후보 단독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적은 만큼 차기 정부의 한 축으로 참여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단일화 방식에 대해 국민의당 내부에선 일치된 견해가 없지만, 여론조사를 통해 지지율이 높은 후보가 대통령을 맡고 다른 후보는 총리를 맡는 게 좋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여론조사를 선호하는 것은 최근 여론조사 결과 이 후보와의 가상 대결에서 안 후보가 윤 후보에 크게 밀리지 않는 결과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이든 가시밭길이다. 공동정부 구성도 대통령과 총리를 누가 맡고, 내각은 어떻게 나눌지를 놓고 양측이 동상이몽이다.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다. 과거 사례를 보면 그 방식을 놓고 생사를 걸 듯한 싸움이 벌어졌다. 스무고개가 따로 없었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대선 후보는 TV 토론을 거쳐 여론 조사 방식으로 후보를 결정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양측은 여론 조사 질문 문구를 두고 갈등이 심화됐다. 노 후보 측은 ‘적합도’를, 정 후보 측은 ‘경쟁력’을 각각 고수했다. 막판 노 후보가 양보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경쟁할 단일 후보로 노무현·정몽준 후보 가운데 누구를 지지하십니까’라는 문구로 합의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지율에서 앞서 나가던 정 후보 측은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고 환영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2002년 11월 24일 밤 12시를 넘겨 발표된 여론 조사 결과는 노 후보의 승리였다. 뒤지던 노 후보가 승리한 데는 ‘통 큰 양보’ 때문이었다. 문구를 놓고 양 후보 측이 지루하게 지지고 볶는 모습에 싫증이 난 국민들은 막판에 과감하게 양보한 노 후보가 신선하게 다가왔고 그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간 단일화 협상때도 적합도냐, 경쟁력이냐가 쟁점이 됐다.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맞서 문 후보는 ‘적합한 후보(적합도)’를, 안 후보는 ‘이길 수 있는 후보(경쟁력)’를 각각 고수하면서 팽팽하게 맞섰다. 끝내 합의하지 못하고 안 후보가 전격 사퇴하면서 단일화 협상은 사실상 깨졌다.

지난해 4월 7일 실시된 서울시장 보궐 선거를 앞두고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단일화 협상에서 후보 등록 시한(3월 19일)을 넘기면서까지 맞섰던 것도 적합도, 경쟁력 문구 때문이었다. 오 후보는 ‘어느 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느냐’, 즉 적합도를 선호한 반면 안 후보는 ‘여당 후보를 상대로 누가 경쟁력이 있느냐’를 주장했다.

안 후보 측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상대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작용했고 오 후보 측은 ‘적합도’ 조사가 유리하다고 봤다. 핑퐁게임이 계속되자 양당에서 거센 비판이 나왔고, 두 후보는 경쟁력, 적합도를 적절히 섞은 ‘야권 단일후보로 국민의힘 오세훈,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중 누가 적합하다(경쟁력있다)고 보느냐’로 결정했다.

적합도와 경쟁력 문구가 어떤 차이가 있길래 매번 이런 갈등이 벌어지나. 적합도는 경쟁 상대 변수를 배제하고 그 후보에 대한 선호도 만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그 사람이 선출될 가능성 여부를 떠나 개인의 호불호가 작용한다. 지지층이 두터운 거대 정당 후보일수록 적합도를 선호한다. 경쟁력은 이런 개인 호불호를 떠나 상대 후보와 싸워 이길 수 있는지 여부를 보고 선택하는 것이다. 실제 여론 조사에서 적합도와 경쟁력으로 물으면 지지율이 달리 나온다.

여론조사 문구 하나가 그리 큰 문제가 되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지율 0.01% 차이에도 승부가 갈릴 수 있기 때문에 후보들은 쉽사리 양보하기 힘들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가 “악마는 디테일 속에 있다”고 표현한 그대로다.

이 때문에 윤 후보와 안 후보가 여론조사 방식을 택한다고 하더라도 합의까지는 숱한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윤 후보 측은 적합도를 선호하고 있다. 반면 안 후보 측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단순 지지율에선 윤 후보에 뒤지지만, 이 후보와 가상 대결 땐 윤 후보에 못지않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만큼 경쟁력을 고수할 가능성이 크다.

홍영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