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러 제재 딜레마…에너지·대출금에 '발목'

입력 2022-02-10 17:29
수정 2022-02-1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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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 방안을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경제보복을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제재가 실현되면 EU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일촉즉발로 치닫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유럽의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지정학적 악재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 원자재 의존도 높은 유럽
10일 EU 집행위원회(EC)에 따르면 EU 회원국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 의존도는 38%에 이른다. 러시아산 원유 의존도도 33%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갈등을 막기 위해 경제 제재 방안을 거론하고 있지만 이를 지켜보는 각국의 속내가 복잡한 이유다.

EU는 미국 카타르 등과 긴밀히 접촉하며 천연가스 수입원을 물색하고 있다. 일본도 최근 7만t급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유럽으로 보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하지만 러시아 공급량을 모두 채우긴 역부족이다. 유럽 내 가스 매장량이 바닥난 데다 가스 가격까지 고공행진하고 있어서다.

친환경 에너지로 급격히 전환하면서 유럽 내 원자력·석탄발전소 등이 문을 닫은 것도 대응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앤드루 커닝햄 캐피털이코노믹스 연구원은 “전쟁이 시작되면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해 12월 정점이던 ㎿h당 180유로를 가볍게 넘어설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와의 합작 투자를 늘려 온 BP, 셸 등 유럽 석유기업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 때문에 EU가 ‘러시아산 가스 공급 중단’이란 제재 카드를 꺼내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금융시장 전략가인 데이비드 로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제조 및 금융 산업에도 영향원자재 수급이 막혀 공장이 멈출 위험도 크다. 자동차 배기가스를 정화하는 촉매제로 쓰이는 팔라듐은 EU 사용량의 40%가 러시아산이다. 에어버스와 보잉은 비행기 제조에 쓰이는 티타늄 절반을 러시아산에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가 중국과 힘을 합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유럽은 마그네슘 수입량의 93%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유럽에서 쓰이는 텅스텐의 69%, 티타늄의 45%, 바나듐의 39%가 중국산이다.

금융회사들의 자금 운용에는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EU 은행들이 러시아 기업에 빌려준 돈은 600억달러에 달한다. 2020년 EU 수출액에서 러시아가 차지한 비율은 4%로 5위에 올랐다. 폴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은 러시아 수출 의존도가 높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경제적 관점에선 평화가 모든 종류의 전쟁보다 낫다”고 했다.

러시아는 연일 무력시위 강도를 높이고 있다. 러시아군은 이날 벨라루스 등에서 3만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합동 군사 훈련을 벌였다. 미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의 리처드 와이츠 소장은 “러시아가 서방국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전쟁 위험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러시아는 외교적 메시지도 내놨다. 마리야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국의) 무기 지원이 중단되면 긴장이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NATO 확장을 중단하고 우크라이나를 중립국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EU는 “군사적 긴장 관계를 완화하고 대화로 풀자”고 촉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통화하는 등 외교활동을 확대했다. 전쟁이 시작되면 폴란드 주둔 미군을 동원해 미국인 탈출을 돕는 국방부 계획안을 바이든 대통령이 승인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