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업계가 작년 말부터 터진 횡령과 임상 실패 등의 악재에 비상이 걸렸다. 주가가 급락하자 자사주 매입은 물론 창업자가 경영 전면에 등장하며 주주 달래기에 나선 곳도 있다. 계속된 악재에 업종 시가총액(KRX헬스케어 기준)은 작년 말 대비 33조원(14.9%) 증발했다.
HK이노엔은 10일 전체 발행주식의 2%에 해당하는 자사주 2890만 주를 6개월간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금액으로 치면 242억원 규모다. 작년 8월 증권시장 데뷔 당시 7만원에 육박하던 주가가 최근 4만원대 초반까지 떨어지자 적극적인 주가 부양에 나선 것이다. HK이노엔 관계자는 “다양한 주가 부양정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셀트리온그룹은 오는 4월까지 1500억원어치의 자사주를 집중 매입한다. 김형기 셀트리온헬스케어 대표는 최근 자사주 1만 주를 장내에서 사들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2025년부터 잉여현금흐름의 10%를 주주 환원에 쓰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사가 주주환원 정책을 언급한 것은 설립 11년 만에 처음이다.
신약 개발 바이오벤처들도 바빠졌다. 메드팩토는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임상 과정에서 사망 사례가 보고돼 주가가 급락하자 창업자인 김성진 대표가 자사주 2만4780주를 매입했다. 김현수 파미셀 대표는 2만9150주,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는 7만8000주의 자사주를 최근 사들였다. 이 대표가 매입한 자사주 규모는 약 10억원에 이른다. 크리스탈지노믹스, 휴젤 등도 자사주를 매입해 주가 부양에 나섰다.
창업주가 경영 전면에 복귀한 사례도 있다. 세포치료제를 개발하는 SCM생명과학은 창업자인 송순욱 박사가 대표로 복귀했다. 인공지능(AI) 기반 진단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인 뷰노도 최근 대표집행임원을 변경했다. 공동 창업자인 김현준 대표가 사내이사직만 맡기로 하고 최대주주인 이예하 이사회 의장이 대표집행임원에 선임됐다.
한 애널리스트는 “바이오회사는 긍정적인 임상 데이터와 주목할 만한 기술 이전 등 펀더멘털 측면의 호재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