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NM이 물적분할을 통한 스튜디오 자회사 설립을 일단 중단하기로 했다. 당초 이 자회사는 CJ ENM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야심작’으로 평가됐다. 국내외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 융합을 시도하는 멀티 스튜디오로 키우겠다는 포부도 내놨다. 하지만 여론 악화와 규제 우려까지 겹치면서 결국 물적분할을 예고한 국내 대기업 중 재검토에 나선 첫 사례가 됐다. 대선 후보들이 물적분할에 대한 규제 방안을 대거 공약으로 내거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CJ 외에 SK, 한화, 네이버 등 물적분할을 예고한 다른 기업도 ‘규제대상 1호’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를 강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분할 상장계획 속속 ‘멈춤’CJ ENM 외에 분할 후 상장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려던 기업들은 속속 계획을 바꾸고 있다. 카카오는 물적분할을 통해 세운 카카오모빌리티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상장(IPO)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고 LG에너지솔루션 이후 최대어로 언급돼온 SK온도 “IPO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시장에 먼저 선을 그었다. 업계에선 진행 중인 조(兆)단위 규모의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를 통해 향후 3~5년간 투자금을 미리 조달하고, 시장 상황과 경쟁 환경을 본 뒤 다시 상장 절차를 추진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KT는 주요 사업부문 중 성장성이 뚜렷한 클라우드 및 인터넷데이터센터(IDC) 부문의 분사를 검토해왔지만 공식화 시점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SK그룹(티맵모빌리티, 11번가, 원스토어) 신세계그룹(SSG닷컴) CJ그룹(티빙) 네이버(네이버웹툰) 등 분할을 마쳤거나 사모펀드(PEF) 등에서 자금을 조달한 기업들도 불똥이 튈까 우려하고 있다. 투자자의 자금을 회수해주는 주요 창구였던 IPO에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세밀한 주주 설득이 관건기업으로선 과도한 규제로 사업부 분할 및 IPO의 순기능까지 차단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들은 재무적인 성과를 보이지 못한 신사업이라도 잠재력을 인정받으면 분할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다. 사내에 묻힐 수 있었던 성장부문의 가치를 분할을 통해 재평가받기도 했다. 대안도 마땅치 않다. 공모시장에서 증자로 자금을 조달하면 자회사에 대한 모회사 지분율이 낮아져 경영권 위협에 노출된다.
전문가들은 신설 자회사의 동시 상장 시 모회사 주주에게 청약우선권이나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방식 등 제도적 보완책이 논의되는 만큼 일정 정도 제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최소화할 ‘당근’을 제시하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 격차가 앞으로 뚜렷해질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올해부턴 뛰어난 경영진을 보유하고 있고, 최대주주와 소액주주 간 이해관계가 일치되며, 포트폴리오를 적극 관리하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 차별화는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에선 CJ ENM도 보다 세밀한 주주 설득 과정이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CJ ENM이 2018년 CJ오쇼핑과의 합병 과정에서 주주들에게 “‘미디어커머스사’로 재탄생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히며 동의를 구했지만, 4년여 만에 기업분할에 나서면서 설득력이 떨어지게 됐다. 분할 발표 이후 증권가에서도 이례적으로 직접적인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다 분할해서 내보내면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제목의 하나금융투자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CJ ENM 담당 애널리스트는 “당시 회사 약속을 믿고 합병에 동의했던 투자자들로선 CJ ENM이 오쇼핑이 보유하던 현금만 활용하고 정작 과실을 거둘 땐 분사한다는 뿌리 깊은 불신이 있을 것”이라며 “사업 청사진을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점이 숙제로 남았다”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