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와 삼성전자 등이 ‘오픈랜(개방형 무선접속망)’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오픈랜은 서로 다른 제조사가 만든 통신장비를 상호 연동할 수 있는 기술이다. 기존엔 통신장비 제조사가 각 통신사의 요구 사양에 맞춰 설비를 따로 만들다 보니 규격이 달라 호환 운용할 수 없었다. 장비 종속성 확 낮춰오픈랜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 통신사와 장비 제조사가 무선 기지국에 들어가는 각종 하드웨어·소프트웨어에 대해 개방형 표준을 마련하는 게 첫 단계다. 서로 다른 기업이 만든 장비 간 기본적 호환성을 갖추는 과정이다. 표준을 만들면 각 사업자가 장비를 상호 연동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요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채택한 스마트폰을 비롯해 노트북, 가습기, 테이블 조명 등 각기 다른 소형 전자기기를 충전할 때 USB C타입 케이블이 주로 쓰이는 것과 비슷하다.
다음 단계는 무선 기지국 운용체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장비를 서로 분리하는 것이다. 어느 기업이 만든 장비를 쓰든 소프트웨어만 업데이트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통신사가 특정 제조사 장비에 더 이상 종속되지 않아도 된다.
통신사에는 오픈랜이 장비 선택지를 넓히고 통신 인프라 구축에 드는 비용을 낮출 수 있는 길이다. 여러 회사의 통신 장비를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되면 부품을 구하기 쉬워지고 그만큼 기지국 구축에도 속도를 낼 수 있다. 전파 도달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아 기지국을 촘촘히 설치해야 하는 5세대(5G)·6세대(6G) 이동통신 운용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 등 통신장비 사업자엔 업계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다. 기존에 다른 기업 장비를 먼저 도입해 쓰고 있는 통신사에 자사 장비를 팔기 힘들었으나, 오픈랜 방식이 확산되면 기능과 가격 등을 차별화해 판로를 확 넓힐 수 있다.
시장조사기업 델오로에 따르면 작년 3분기 기준 세계 통신장비 시장 1위 사업자는 화웨이로 점유율이 29%에 달한다. 공동 2위는 15% 비중인 노키아와 에릭슨이고 이 뒤엔 ZTE(11%), 시스코(6%) 등이 있다.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3%대다. 화웨이, ZTE 등 중국 기반 통신장비 제조기업을 견제하려는 미국이 오픈랜 도입에 적극적이라 향후 미국 등 시장에서 점유율 변동이 일어날 여지가 크다.
삼성, 영국에서 오픈랜 시험 성공국내 각 기업은 해외 통신사들과 장비 연동 시험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엔 삼성전자가 유럽 1위 이동통신 기업 보다폰과 함께 영국에서 오픈랜 방식 5G 신호 송출에 성공했다. 영국에서 오픈랜 방식 통신 신호를 쏜 첫 사례다. 5G 기지국을 소프트웨어 방식으로 가상화한 ‘브이랜’ 기술을 활용했다. 보다폰은 이를 시작으로 향후 2500개 넘는 통신국사를 오픈랜 방식으로 가동할 계획이다.
같은 달 KT는 일본 통신사 NTT도코모, 통신장비사 후지쓰와 손잡고 오픈랜 장비 연동 시험에 성공했다. 후지쓰는 NTT도코모를 통해 세계 최초로 오픈랜 기반 상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KT는 서울 우면동 KT융합기술원에서 오픈랜 테스트베드(시험장)를 운영하고 있다. 작년 10월 자체 개발한 오픈랜 5G 장비와 후지쓰 장비 간 호환성 검증을 마쳤다.
LG유플러스는 마곡 사옥에 5G 오픈랜 테스트베드를 두고 있다. 국내 통신장비기업 다산네트웍솔루션즈를 비롯해 미국 알티오스타·인텔, 일본 라쿠텐심포니·NEC 등과 오픈랜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이미 클라우드 기반 가상화 기지국 장비, 5G 단독모드(SA) 오픈랜 시스템 등을 검증했다. 작년 말엔 세계 200여 개 기업과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오픈랜 동맹 ‘오랜 얼라이언스’에서 오픈랜 장비 실증 결과를 발표했다.
SK텔레콤은 얼라이언스 이사회 소속 기업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텔, 페이스북, 노키아 등과 설립한 텔레콤 인프라 프로젝트 등을 통해 5G 오픈랜 기술을 준비하고 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