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트를 잘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긴다(A man who can putt is a match for anyone).’
1860년 세계 최초 골프대회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한 윌리 파크(미국)의 격언은 ‘그린 플레이’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손에 잡힐 듯 말 듯, 거리와 굴곡을 아우르는 절묘한 힘 조절은 최종 타수와 승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대형 사모펀드(PEF) 운용사를 이끄는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 회장에게도 퍼트는 애증의 존재였다.
“600년 전통의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코스에서 퍼트 때문에 버디를 놓쳤어요.” 올해 고희(古稀)를 맞은 ‘회장님’은 시간을 쪼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정보기술(IT)로 타수를 줄일 방법을 찾아나선 것이다. 3년 가까운 ‘고행’ 끝에 탄생한 골프 앱 ‘버디캐디’는 오는 11일 무료 공개를 앞두고 있다. 그는 앱 출시 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3퍼트’를 없애 누구나 4~5타씩 줄일 수 있는 무료 플랫폼을 개발했다”며 “㎝ 단위까지 정밀하게 가이드해주는 최초의 골프 앱”이라고 강조했다. 40년 만에 뛰어든 개발 전선
진 회장은 구력 40년의 ‘골프 마니아’다. 홀인원만 다섯 번을 했다. 라이프베스트(생애 최고 스코어)는 필리핀 FA코리아CC에서 세운 69타다. “공부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IT처럼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습해야 실력이 유지된다”는 점이 골프에 빠져든 계기다. 다만 퍼트만큼은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진 회장은 “경사가 심하면 그린 위에 올라간 공이 밖으로 나가는 일도 허다했다”며 “버디를 놓칠 때마다 과학적인 해결법은 없는지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미국 국비유학생 1호로 매사추세츠주립대,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 석·박사학위를 딴 그는 해결책도 IT에서 찾았다. 퍼팅에 영향을 미치는 그린 데이터를 정확히 분석할 수 있다면 감에 의존하는 연습보다 실력이 쉽게 향상될 것이라 믿었다. 문제는 골프와 컴퓨터를 모두 잘하는 개발자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 그는 결국 독자 개발을 택하고 2018년부터 알고리즘 구성에 직접 뛰어들었다.
‘40년 만의 코딩’은 녹록지 않았다. “마지막 코딩이 박사과정 재학 시절이었으니, 막막함이 앞섰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늘 시간에 쫓겼다. 버디캐디 프로토타입 개발이 한창이던 작년에는 주중 새벽 4시부터 오전 8시까지 4시간씩 꼬박 코딩을 했다. 진 회장은 “반도체 관련 박사 논문을 쓸 때 ‘포트란’ 언어를 활용해 수치 해석 작업을 했는데, 언어 체계 틀이 그리 다르지 않았다는 게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고 했다. 1200쪽짜리 C언어 책은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됐다. 지난해 7월엔 사재 10억원을 쏟아 스타트업 버디캐디컴퍼니도 설립했다. 300개 골프장 그린 정보 ‘빼곡’버디캐디의 퍼팅 가이드는 정밀하다. 그린 높낮이·수평 거리·방향 데이터를 ㎝ 단위로 고려해 골퍼가 실제 쳐야 할 보정 거리를 알려준다. 기본 데이터에는 공과 그린 잔디 사이에 발생하는 마찰력, 반발력, 굴곡 등이 모두 포함된다. 예컨대 공에서 홀까지 1㎝가량 오르막이 존재한다면 버디캐디는 퍼팅 거리를 1%가량 추가한 뒤 실제 칠 거리를 10㎝ 단위로 표시해준다. 좌우 높낮이도 감안해 곡선 퍼팅, 즉 ‘얼마만큼 태워서 굴릴지’도 알려준다. ‘홀 왼쪽 다섯 컵 반을 보고 3m만 굴리라’는 식이다.
그는 “버디캐디 개발을 위해 집 지하 1층에 스크린 골프장과 골프시뮬레이터 프로그램을 설치했다”며 “실제 골프와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2년간 필드 골프장과 지하 벙커를 오가며 변수 조정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연내 공개될 2.0 버전에는 어프로치샷 가이드 기능을 추가한다. 이후 기능 적용 범위를 골프장 전체로 확장해나갈 계획이다. 진 회장은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연동하고 커뮤니티 기능도 넣는 등 할 일이 아직 많다”며 “버디캐디를 프로든 아마추어든 누구나 좋아하는 ‘골프 플랫폼’으로 키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