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차가 뒤에서 '쾅'…사고 내놓고 병원비 못 준답니다" [김수현의 보험떠먹기]

입력 2022-02-06 07:00
수정 2022-02-06 16:31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30대 김모씨는 4일 전 딸아이의 하교 시간에 맞춰 차를 몰고 나왔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한 고급 외제차로부터 후방 추돌 사고를 당한 겁니다. 사고처리의 기본은 차를 수리하고 신체와 관련된 치료를 받는 것이지만, 김씨의 상황은 다릅니다.

김씨는 사고 이후 허리 통증에 다리 저림 증상까지 나타났지만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사고 가해자가 대물접수만 처리하고 대인접수 요청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주정차 상태에서 일어난 후방 추돌 사고인 만큼, 후행 차량에 100% 과실이 인정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가해자는 가벼운 사고라는 이유로 병원비를 부담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폭언을 퍼붓는 가해자의 위협적인 태도와 대인접수 부재 시 진료비조차 돌려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일단은 찜질팩과 파스를 붙이며 아픔을 견디고 있다는 김씨. 가해자에 교통사고 후유증을 호소하며 대인접수 요청을 반복했다는 김씨는 더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자신의 사비를 털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달 남은 생활비 잔액을 확인하며 깊은 한숨을 내쉴 뿐입니다.
자동차 운전자라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사고의 피해자가 되는 경험이 한 번씩은 있을 겁니다. 단순 접촉 사고부터 5중 추돌 사고까지 타인의 부주의로 발생할 수 있는 교통사고 사례는 무수히 많은데요. 큰 사고의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예상치 못한 충격이 신체에 가해지는 만큼, 후유증에 대한 관리는 필수로 여겨집니다.

사고 후유증 관리는 불필요한 과잉진료가 아닌 개인의 신체 훼손을 회복하는 수준에서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고 가해자가 자의적인 판단으로 병원비 부담 자체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상치 못한 사고에 피해를 본 입장에선 너무나 당황스러운 상황일 겁니다. 이처럼 비합리적인 일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시행할 수 있는 권한이 바로 '직접청구권'입니다.

직접청구권은 말 그대로 피해자가 가해자의 보험사로 직접 손해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인데요. 원칙상으론 피보험자가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법률상의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피보험자가 보험청구를 거부하거나 보험접수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면 사고 피해자의 청구가 허용됩니다. 이는 상법 제724조 제2항과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10조에 따른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보험가입자에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할 경우, 피해자는 본인에게 직접 보험금을 지급할 것을 보험사에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에서도 피해자가 보험사에 직접 손해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두고 있죠.

이는 판례를 통해 증명된 내용이기도 합니다. 대법원 2019년 4월 11일 선고 2018다30078손해배상 판결에는 '피해자의 직접청구권은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손해배상채무를 보험사가 병존적(竝存的)으로 인수한 것으로서 피해자가 보험회사에 대하여 가지는 손해배상청구권'이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따라서 보험사는 피보험자의 접수 거부를 이유로 사고 피해자의 손해배상금 청구를 거절할 수 없습니다. 청구권자는 △교통사고 발생 사실 확인 서류(교통사고사실확인원) △손해배상청구서 △손해액 증명 서류 △보험사 요청 서류를 제출해 보험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보험사는 손해배상 청구에 따라 즉각 손해배상액을 결정하고, 배상액 확정일로부터 7일 이내에 지급해야 합니다. 단, 예외는 있습니다. 보험사는 피보험자가 사고에 대해 가지는 항변으로 손해배상 청구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습니다. 피보험자가 교통사고와 피해자 상해의 인과관계를 부인하고 있고 그에 대한 입증 자료를 제시한다면, 보험사도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겁니다.

통상 손해배상책임 관련 입증 자료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마디모 프로그램을 사용합니다. 이는 대표적인 교통사고 상해 감정 프로그램입니다. 사고 관련 자료와 실험을 통해 검증된 데이터를 반영함으로써 사고의 충격이 인체에 미친 영향을 감정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마디모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경찰서를 통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신청되기 때문에 교통사고가 경찰서에 우선 신고돼야 합니다. 또 마디모 프로그램 신청에 따른 인가 여부는 경찰서 고유권한이기에 근거 확보 과정상 불확실성도 존재합니다.

아울러 보험사는 청구권자에 대한 손해배상금 지급 거절 또는 연기를 결정했더라도, 사유에 대해 서면 통지해야 합니다. 통지 허용 기간은 손해배상청구 서류 제출일로부터 30일 이내로 제한됩니다.

보험사가 정당한 절차에 의해 지급 거절 또는 연기를 결정했더라도 가불금 청구는 무조건 허용해야 합니다. 피해자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11조 규정에 따라 보험사에 자동차보험진료수가(치료비) 전액을 가불금으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 외 보험금에 대해선 손해액의 50%로 금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보험사는 지급 청구일로부터 10일 이내에 가불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서는 가불금 지급을 거부한 보험사에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토록 하는 벌칙 규정까지 두고 있습니다. 다만 유의할 내용은 있습니다. 보험사가 가불금을 지급한 후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판명될 경우, 청구권자에 대한 지급액 반환 청구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교통사고를 낸 가해자가 대인접수 요구를 거부할 경우 사고 피해자는 직접 가해자 측 보험사에 손해배상금을 청구해 병원 진료, 치료, 수술에 따른 비용을 받을 수 있다"면서도 "제출해야 할 서류가 적지 않고 경미한 사고라면 보험사 측의 지급 거절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여러 요소를 고려해 배상금을 청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위 내용은 특정 사례에 따른 것으로, 실제 민원에 대한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여부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