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설을 보냈는데 절기상으론 어느새 ‘입춘’(양력 2월 4일)이 지났다. 입춘(立春)은 새해의 봄이 시작된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대한(大寒)이라는 ‘큰 추위’가 풀린 뒤 이어지는,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다. 느낌으론 아직 한겨울 같아 실감 나지 않는다. 하지만 계절은 눈이 녹아 비가 돼 내린다는 ‘우수(雨水)’를 향해 달려간다. 설은 음력 1월 1일로 날짜가 고정돼 있지만, 절기는 양력으로 따져 정하는 데서 오는 인식상의 차이다. 입춘은 설을 전후로 들어서는데, 지구 공전으로 인한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절기가 정해지기 때문에 해마다 날짜가 조금씩 달라진다. 입춘은 봄의 시작 … 농사짓는 기준으로 삼아절기는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계절의 표준’이 되는 구별이다. 그것은 곧 절기를 ‘농사짓는 기준’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곡우(穀雨·양력 4월 20일)에 농사비가 내리고, 망종(芒種·6월 6일)에 씨를 뿌리며, 추분(秋分·9월 23일) 즈음에는 논밭의 곡식을 거둬들이는 식이다. 서양에서는 1주일을 단위로 해 한 달을 따지지만 우리 조상들은 한 달에 두 번, 대략 15일을 기점으로 바뀌는 절기에 맞춰 삶을 영위했음을 알 수 있다. 입춘은 그 24절기가 시작하는 때다. 사계절을 말할 때 봄·여름·가을·겨울로 봄을 제일 먼저 치는 게 그런 까닭이다.
옛날에는 동지를 새해 첫날로 삼기도 했다. 동짓날은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은 가장 짧다. 이날을 기점으로 낮이 점점 길어진다는 뜻이다. 양(陽)의 기운이 커진다는 점에서 이날을 한 해의 시작으로 봤다. 겨울을 알리는 입동에 들어선 뒤 소설, 대설을 거쳐 겨울 한가운데 동지가 있고 이어 소한 대한 추위를 지나 드디어 입춘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즉 동지는 입동과 입춘의 딱 중간에 있는, 절기상 겨울이 한창인 때다. 양력으로 12월 22일이나 23일께다.
입춘은 ‘설 립(立), 봄 춘(春)’이다. 한자 의식이 흐려진 요즘 이를 자칫 ‘들 입(入)’ 자를 써 ‘入春’인 것으로 알기 쉬우니 조심해야 한다. 입춘은 봄에 들어선다는 의미이긴 하지만, 엄밀히는 봄이 본격적으로 오기 전 초입에 그 기운이 일어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입춘 외에 각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인 입하(立夏), 입추(立秋), 입동(立冬)이 모두 같은 이치로 만들어진 말이다. ‘입춘방’은 새봄 맞아 길운 기원하는 문구입춘을 알리는 여러 우리말 가지 가운데 하나로 ‘입춘방’을 알아둘 만하다. 만물이 소생하는 새해 첫 절기를 맞아 우리 조상들은 벽이나 대문, 문지방 같은 데에 복을 기원하는 글귀를 써 붙였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같은 게 대표적인 것이다. 그것을 ‘입춘방(立春榜)’ 또는 ‘입춘첩(立春帖)’이라고 부른다.
榜은 ‘방을 붙이다’할 때의 그 ‘방’이다. 지난 시절, 대중매체가 발달하기 전에 쓰이던 홍보 게시판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물론 첨단 정보기술(IT)이 발전한 요즘도 인사 등 주요 공지사항은 방을 붙이는 전통이 살아 있어서 꽤 통용되는 말이다. 그 글을 ‘방문(榜文)’이라고 한다. ‘널리 알리기 위해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써 붙이는 글’이다. 속담에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고 할 때의 ‘방문’과는 구별되는 말이니 주의해야 한다. ‘방문(方文)’은 약을 짓기 위해 약 이름과 분량을 적은 종이를 말하는데, 지금의 ‘처방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입춘첩’도 많이 쓰는 말이다. 조선일보 등 1930년대 신문에서 입춘방과 더불어 꾸준히 입춘첩이 쓰여 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입춘방이 《표준국어대사전》에 단어로 올라 있는 데 비해 입춘첩은 표제어로 오르지 못했다.
예전 ‘농자천하지대본’의 시절엔 입춘에 많은 행사가 있었다. 근래에는 점차 사라져가는 듯해 안타깝다. 입춘방 또는 입춘첩은 그중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문화 자산이라고 할 만하다. 우리말 명칭이나마 널리 알려지도록 이즈음에라도 그 의미를 되새겨 봤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