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TV토론 시청률 40%…김혜경·건희 '김'자도 안 나왔다 [조미현의 국회 삐뚤게 보기]

입력 2022-02-04 11:23
수정 2022-02-04 15:49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처음으로 열린 TV 토론은 시청률 40%를 기록했습니다. 역대 TV 토론 시청률로 따지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가 맞붙은 1995년 15대 대선 TV 토론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입니다. 여기에 각 지상파 3사의 유튜브 생중계를 지켜본 시청자는 20만명이 넘습니다.

전문가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해 "달변가라는 평가에 걸맞은 모습(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이라 했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 대해서는 "당내 토론보다 대폭 발전했다(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라고 평했는데요. 토론의 승패는 평가하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에 전날 인상적이었던 TV 토론의 특징을 몇 가지 살펴봤습니다. ①배우자 공세는 없었다이번 대선은 유례없이 '배우자 리스크'가 주요 이슈로 부상했습니다. 여권은 윤 후보가 국민의힘 후보로 공식 지명된 뒤 배우자 김건희 씨를 겨냥해 맹폭을 가했습니다. 김건희 씨의 겸임 교수 채용 과정의 경력 부풀리기, 무속 중독 등의 의혹을 잇달아 제기했습니다. 김건희 씨를 "최순실보다 더한 인물"이라는 프레임 공격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상대적으로 배우자 리스크에서 자유로워 보였던 이 후보는 TV 토론을 앞두고 배우자 김혜경 씨의 '황제 의전'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김혜경 씨는 경기도 공무원에게 약 대리처방, 음식 배달 등 사적인 심부름을 시켰고, 법인카드 유용 등 공금 횡령 의혹까지 받고 있습니다.

두 후보는 TV 토론에서 서로의 배우자에 대한 공세를 자제했습니다. 이를 두고 한 정치권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남편 둘이 서로의 아내를 흠집 내는 모습을 보이면 볼썽사나웠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마찬가지입니다. 안 후보까지 배우자 공세를 피한 것은 '양강(兩?) 대선 후보와의 정면 대결'이 훨씬 모양새가 좋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범죄 피해자인 김지은 씨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 윤 후보 배우자 김건희 씨의 7시간 녹취록을 잠깐 언급했지만, 김건희 씨에 대한 직접적인 공세는 아니었습니다.

②尹의 말실수 줄었지만…윤 후보의 말실수도 TV 토론의 관전 포인트였는데요. 토론이 120분간 진행되는 동안 윤 후보는 크게 두 가지 정도 말실수를 했습니다.

윤 후보는 '청약 만점이 몇 점이냐'는 안 후보의 질문에 "40점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안 후보는 즉시 "84점"이라고 말했고, 윤 후보는 "아, 예, 84점"이라고 정정했습니다.

대선 후보가 청약 만점이 몇 점인지 알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릴 수 있습니다. 부동산 정책이 이번 대선의 핵심 이슈인데 청약 만점 정도는 수치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과거 '버스요금이 얼마냐'라는 식의 '함정 질문'과 다를 게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윤 후보는 정치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후보들과 비교했을 때 디테일한 부분에서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모르더라도 아마추어로 느껴지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윤 후보에게는 관건이 될 텐데요. 전혀 엉뚱한 대답을 내놓으면서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보다 안 좋은 인상을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후보가 "RE100을 아시나"라고 묻는 질문에 "그게 뭔가요"라고 답한 것도 많은 언론에서 말실수로 꼽았는데요. RE100은 '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로, 2050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충당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제 캠페인입니다.

사실 RE100은 일반인도 잘 모르기 때문에 윤 후보가 모른다고 인정한 것은 여권 지지층을 제외하고는 크게 마이너스가 되는 부분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모른다"를 세련되게 말하는 방법은 많습니다. 윤 후보처럼 "그게 뭔가요"라고 해버리면 RE100을 모르는 사람들에게조차 아마추어 같은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1일 1실수'의 오명을 써온 윤 후보는 이번 토론에서는 예상과 달리 말실수를 확연히 줄였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토론에서 말실수를 덜 실수처럼 보이는 전략은 필요해 보입니다.

③ 질문 공세 퍼부은 李이 후보는 RE100뿐 아니라 'EU택소노미', '블루수소', '그레이수소'와 같은 생소한 단어를 언급하며 윤 후보를 곤혹스럽게 했습니다.

이 후보는 원전을 강조하는 윤 후보에게 "EU택소노미가 중요한 의제인데 원자력과 관련된 논의가 있지 않으냐"며 "원전전문가에 가깝게 원전을 주장하시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나가실 생각이시냐"고 물었습니다. 윤 후보는 "독일이 원전을 없앴다가 결국은 프랑스에서 수입하고 러시아에서 가스를 들여오지 않느냐"고 답했습니다. RE100으로 당황한 윤 후보는 EU택소노미도 무엇인지 모르지만, 원전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에둘러 답을 한 겁니다.

하지만 이 후보는 재차 "제가 드리는 말씀은 그 뜻이 아니고 EU택소노미라고 하는 새로운 제도가 논의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원전 문제를 어떻게 대응하실 생각이냐"며 추궁했습니다.

EU택소노미는 유럽연합에서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이 무엇인지 분류하는 기준입니다. 친환경 녹색 사업에 원전 투자를 포함할지가 논란이었는데요. EU는 원전을 친환경으로 분류했습니다.

사실 이 후보가 진짜 윤 후보의 답을 원했다면 EU택소노미가 무엇인지 설명한 뒤 의견을 물어야 했을 겁니다. 원전을 친환경으로 봐야 하느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 후보는 윤 후보가 "들어본 적이 없으니 가르쳐 달라"고 말하기 전까지 EU택소노미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질문 공세는 거듭됐습니다. 이 후보는 "미래산업의 핵심은 탈탄소·수소경제"라며 그린수소, 블루수소, 그레이수소라는 단어도 언급했습니다. 그린·블루·그레이 수소는 수소의 생산 방식에 따른 구분인데 이 역시 생소합니다.

이 후보는 '준비된 대통령'이란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질문 공세 전략으로 펼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 후보가 윤 후보보다 친환경 분야에서 다양한 지식이 있는 것처럼 보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 후보의 태도를 두고 평가는 엇갈립니다. 이 후보 지지자들은 "기후 위기 시대에 기본 상식"이라고 이 후보를 높이 평가했지만, "지엽적인 전문 용어 안다고 과시한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대선 후보 첫 TV 토론의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앞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으로 '반드시 해야 하는' 법정 토론은 3번 남았습니다. 이번 토론은 법정 토론이 아닌 후보 간 합의에 따른 것이었는데요. 대선 후보들이 남은 기간 국민의 선택에 도움이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토론에 나서주길 바랍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