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할 가능성이 제기될 정도로 급등세를 타고 있어 유가 상승 수혜 종목이 주목된다. 국제유가 상승은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와 정유기업 주식의 가격이 상승하는 데 영향을 준다. 또 국제유가 상승으로 유전 개발 수익성이 높아지면 석유를 캐내는 데 사용되는 장비와 강관을 각각 만드는 기계장비업종과 철강업종의 수익성도 좋아진다.
WTI, 7년 3개월만에 배럴당 90달러 돌파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3월 인도분 WTI는 전일 대비 2.19% 오른 배럴당 90.19달러에 마감됐다. WTI가 종가 기준으로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선 건 2014년 10월16일(90.34) 이후 7년 3개월여만이며, 작년 말과 비교하면 19.77%가 상승했다.
올해 들어선 뒤 국제유가를 밀어 올린 요인 중 가장 주목되는 건 지정학적 불안이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 러시아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전운까지 감돌고 있다.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에서도 위기감이 높아지는 중이다. 특히 지난달엔 예멘의 후티 반군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석유시설을 공격하면서 국제유가 상승세를 더욱 부채질하기도 했다. 간밤에는 미국 특수부대원의 공습을 받은 이슬람국가(IS)의 수괴 아부 이브라힘 알하시미 알쿠라이시(46)가 제거됐다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성명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지정학적 불안이 고조되는데 공급 증가는 요원한 상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회원 산유국들의 모임인 OPEC+의 증산 계획도 무력해지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간) 열린 OPEC+ 화상회의에서는 작년 7월 결정된 하루 40만배럴 증산 계획이 유지됐다.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국제유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하자 OPEC+는 하루 약 580만배럴을 감산한 바 있다.
뉴욕 월가에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 120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JP모건체이스의 세계 원자재 리서치 책임자인 나타샤 커니버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이 확실히 커졌다면서 긴장이 격화되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 정도까지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가장 직접적으로 국제유가 상승의 수혜를 기대할 수 있는 종목은 관련 자산을 담는 상장지수펀드(ETF)다.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일 타이거(TIGER) 원유선물 Enhanced는 4130원으로 작년말 대비 14.88%가 올랐다. 같은 기간 코덱스(KODEX) WTI 원유선물은 14.90%가 상승했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에 상장된 석유 관련 기업들의 주가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KB스타(STAR) 미국S&P원유생산기업은 전일 하루 동안에만 3.29%가 뛰었다.
정유사 보유한 석유재고 가치 상승에 LNG선 수요 증가까지주식 중에서는 정유·석유·화학 기업과 철강·조선 등 경기민감업종이 주목된다. 실제 설 연휴 기간(1월29일~2월2일) 동안 WTI 기준 국제유가가 1.91%가 오른 걸 한꺼번에 반영해 전일 코스피 화학업종지수는 2.30% 오른 5877.27에, 기계업종 지수는 2.14% 상승한 988.58에, 철강·금속 지수는 1.76% 뛴 4476.99에 각각 거래를 마쳤다. 이 업종들의 상승폭은 코스피 지수의 1.67%보다 크다.
직접적으로는 정유기업이 국제유가 상승의 수혜를 받는다. 보유하고 있는 원유 재고의 가치가 오르면서 회계상 이익인 재고평가이익이 생기고, 유가 상승이 석유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면 수익성도 높아진다. 실제 에쓰오일(S-Oil)의 주가는 지난달 한 달 동안 5.02% 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는 10.56% 하락했다.
석유화학 기업들은 국제유가 상승 초반에는 비용 압력이 강해질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구매처에 전가하게 되면 수익성이 좋아진다. 지난주 합성고무 분야를 제외한 주요 화학제품의 가격이 대체로 강세를 보인 데 대해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국제유가 상승분을 반영해 전반적인 가격 상향이 진행되고 있다”며 “마진은 최악을 통과해 개선이 가능한 국면”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업종도 국제유가 상승의 수혜를 기대할 수 있다. 과거에는 해저 유전 개발을 위한 해양플랜트 발주 기대감에 조선사들의 주가가 올랐지만, 최근에는 석유 대신 가스로 수요가 옮겨가면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수주 가능성이 주가에 더 큰 영향을 준다.
이봉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작년 11~12월 두달 간 선박 발주가 집중돼 2024년 LNG운반선 선복량은 11%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과거 공급량과 비교하면 과잉 발주 영역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겠으나, LNG선의 경우 중국과 유럽의 수요 강세가 예상되는 만큼 올해도 LNG 관련 선박의 발주는 강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선박 공사가 활발해지면 원재료인 철강 수요도 늘어난다. 실제 작년 철강업계가 조선업계에 공급하는 후판(두께 6mm 이상의 두꺼운 철판) 가격을 올리면서, 조선사들이 분기별로 대규모 영업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 수주한 선박 물량에 대한 원가 상승분을 충당금으로 미리 반영하면서다. 또 유전 개발에 필요한 강관도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