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공식 통계부터 기업의 품질검사까지 부정과 조작이 잇따르는 가운데 화학 대기업 도레이에서도 안전성 검사와 관련한 부정행위가 확인됐다. 내부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일본 기업 특유의 폐쇄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도레이는 가전제품과 자동차용 플라스틱 부품의 원료인 수지제품의 안전성 검사와 관련해 일본 공장 두 곳에서 적어도 10여 년간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들 공장은 미국의 제3자 안전과학기관(UL)이 연 4회 시행하는 불시검사에 원본 제품 대신 따로 제작한 샘플을 제출했다. 검사를 쉽게 통과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로 도레이는 판단하고 있다. 전수조사로도 부정 못 걸러내
부적절한 수법으로 검사를 통과한 제품은 약 110종으로 2020년 한 해 동안 약 4만9000t이 판매됐다. 이 중 3000t은 내연성 기준에 미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도레이는 “문제가 된 제품 출하를 중단시켰으며 현재 시점에서 불량 제품으로 인한 사고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도레이는 2017년에도 타이어 보강재를 만드는 자회사에서 품질 데이터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그룹 전체를 조사했지만 이번 부정행위를 적발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작년 11월 사내 설문조사에서 일부 직원이 정보를 제공하면서 문제가 드러났다.
일본 기업과 제품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품질검사 조작과 경영활동의 부정행위는 일본 경제계 전반에서 잇따르고 있다. 미쓰비시전기는 지난해 일본 6개 공장에서 총 47건의 허위 검사 성적표를 작성한 사실이 발각됐다.
미즈호은행에선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의 80%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 장애가 작년 한 해 동안 8번 발생했다.
일본 최대 민영 전력회사인 도쿄전력의 가시와자키·가리와원전에서는 작년 초 직원이 다른 사람의 신분증(ID) 카드로 중앙제어실에 부정 출입한 사례가 적발됐다. 일본 원전이 테러 등에 대비해 무단 침입자를 탐지하는 시설이 미비하다는 점이 드러난 사건이어서 원전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렸다. 도쿄전력은 2011년 폭발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제1원전 운영사다.
도시바는 작년 7월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이 경제산업성을 통해 외국인 행동주의 펀드 주주에게 압력을 가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본사 경영진은 퇴물…현장 이해 못해”미쓰비시전기 도시바 미즈호은행 도쿄전력을 조사한 ‘제3자 조사위원회’는 문제가 있어도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는 조직의 폐쇄성을 사고 발생의 공통적 원인으로 지목했다.
미쓰비시전기 조사위원회는 “관리직급 간부들이 결산 실적 맞추기나 자기 보신에만 급급해 직원들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즈호은행에서는 “중간급 간부가 경영진의 눈치만 보고 리스크를 떠안으려 하지 않아 현장의 의견이 본부에 전달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도쿄전력 직원들은 조사위원회에 “현장의 상사는 언제나 고압적인 태도여서 말을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고 본사의 경영 간부는 퇴물들이어서 현장 실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사회의 감시 기능도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미쓰비시전기 미즈호은행 도시바 모두 이사회의 과반을 사외이사가 차지하고 있지만 이들의 문제 제기는 없었다. 기업 전문 변호사인 구보리 히데아키는 “사장에게 잘 보이려는 인물로만 사외이사를 채웠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메이드 인 재팬’의 신뢰 추락은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정부의 공식 통계조차 10년 가까이 부풀려진 것으로 드러났다. 아사히신문은 국토교통성이 지난 8년 동안 건설 수주 실적을 무단으로 수정해 중복 계상했다고 최근 보도해 파문이 일었다.
건설 수주 실적은 국내총생산(GDP)에 반영되기 때문에 같은 기간 일본의 GDP도 부풀려졌을 것으로 관측된다. 2020년 한 해에만 건설 수주 실적 4조엔(약 42조원)가량이 중복 반영됐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일본 GDP의 1%에 달하는 규모다. 2020년 이전 통계는 중복 반영된 규모가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일본의 GDP가 지속적으로 상당 부분 부풀려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