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의 파국을 누구보다 잘 아는 포르투갈 국민의 선택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2-02-03 09:30
수정 2022-02-03 09:34

포르투갈 여당인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당(PS)이 지난 달 30일 열린 조기 총선에서 바라마지 않던 과반 의석수 확보에 성공했다. 총 230석 중 117석을 얻었다. 17년 만의 단독 과반 확보다.

PS의 승리는 충분히 예상됐지만, 문제는 과반 확보였다. 극좌인 좌파연합, 공산주의-녹색당연맹(공산당)과의 기존 연정이 워낙 삐걱거려 이대로는 안정적 국정 운영이 어려웠다. 뚜껑을 열어보니 PS 득표율은 투표 직전 38%를 넘는 42%에 달했다. 좌파임에도 친(親)시장 실용주의를 표방하고 내일이 없는 포퓰리즘 처방에 반대하는 PS 소속 안토니우 코스타 총리(61)의 3선 도전에 국민적 성원이 예상보다 많이 몰린 것이다.

유럽의 가장 서쪽 끝, 한국과 비슷한 땅덩이의 포르투갈에 평소 세계 언론의 관심이 많이 쏠리진 않는다.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 때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과 함께 'PIGS'로 불리며 방만한 재정운용과 포퓰리즘으로 망한 나라 정도로 인식돼 있다. 2010년 전후한 성장률이 마이너스(-) 4%까지 떨어졌고, 결국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로부터 780억유로(약 102조원)의 구제금융 받기도 했다.

우리에겐 같은 IMF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란 점이 눈길 끈다. 조금 더 살펴보면 다른 IGS 국가들은 여전히 재정적자를 이어가는 반면, 포르투갈은 구제금융을 조기 상환하고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점도 남다르다. 2014년 0.8%이던 경제성장률이 2016년 2.0%, 2017년 3.5%, 2019년 2.5%로 코로나 사태 이전까진 완연한 회복세를 보였다. 실업률은 2013년 17%, 2014년 14%에서 2018년 7%로 떨어졌다.

그 원동력이 바로 구제금융 사태에서 얻은 국민적 각성, 정치권의 변화 몸부림이다. 코스타 총리가 집권한 2015년이 이런 변화의 출발점이었다. 그는 처음엔 우파 정권의 긴축정책에 반대하며 집권했지만, 이후 성장 중심 정책드라이브, 강력한 긴축을 통한 균형재정 추구, 구제금융 조기 상환 등을 적극 추진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좌측 깜빡이(좌파 지향)를 켜고 우회전(친시장 실리 추구)한 셈이다. 그래서 '좌파 같지 않은 좌파' '우파 정책으로 인기 끈 좌파'로 회자된다.

대표적인 게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 임금 인상에 반대하고, 공공지출 확대를 억제한 정책이다. 2019년 좌파연합, 공산당이 중도우파 사회민주당(PSD)과 손잡고 직전 9년간 동결됐던 교사 임금의 소급 인상 법안을 통과시켰을 때다. 당시 코스타 총리는 "교사 임금을 올려주면 군·경찰 등 다른 공무원 월급도 모두 같은 조건으로 올려줘야 한다. 균형예산 원칙이 무너진다"며 내각 총사퇴까지 내걸며 막아나섰다.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무원 11만명 순증, 급격한 주 52시간제 실시 등에 집중한 우리나라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올해는 코로나 위기를 명분 삼아 '꽃샘 추경'이라며 35조원대 돈풀기를 여당이 주장하는데, 코스타 총리는 교사 임금 인상에 8억유로(약 1조480억원)가 든다며 거부했다. 좌파인 이상 분배정책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지만, 세금을 과도하게 쓰지는 않겠다며 균형예산 원칙을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포르투갈내 부동산에 50만유로(약 6억5000만원) 이상 투자하는 외국인에게 장기체류 비자를 발급해주고, 관광업에 편중된 산업구조도 개선하면서 경제활력을 키워왔다. 이런 노력이 2019년 원내 1당에 이어 올해 단일 과반 의석 확보로 결과된 것이다.

눈여겨 볼 대목은 좌우 스펙트럼이 넓을 수밖에 없는 연정 구조에서도 코스타 총리가 자신의 실용주의 노선을 흔들림 없이 지켜가고 있다는 점이다. '깨인 좌파' '나라 구한 좌파'라 불러도 손색 없어 보인다. 이념의 포로가 되지 않은 유연한 사고의 바탕에는 10년 전 재정위기의 기억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좌우를 떠나 방만한 재정 운영과 포퓰리즘 정책이 어떤 파국을 몰고 왔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선을 앞두고 국가재정 퍼주기에 혈안인 한국 정치권의 모습은 IMF의 충격이 이제 가물거릴 정도로 오랜 세월이 흘렀기 때문일까. 구제금융을 부른 위기의 발단이 포르투갈의 경우 포퓰리즘에 특히 더 기인하고 있어서일까. 여러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서유럽의 오랜 좌우 정당간 경쟁 역사, 이념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국민 선택의 안목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한국의 각당 대선 후보들이 토론 주제로 삼아도 좋을 아이템이다. "코스타 총리를 어찌 생각하느냐"에 대한 답이 후보들의 차이점을 좀더 분명하게 보여주지 않을까.

장규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