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무 시인(64)이 열세 번째 시집 《즐거운 소란》(천년의시작·사진)을 펴냈다. 전작 《데스밸리에서 죽다》 이후 2년 만의 신작 시집이다.
그의 서정시는 일반 서정시와 결이 다르다. 부드럽고 완곡하며 애상적이고 낭만적인 정서와 어법 등 서정시가 지닌 일반적인 특징은 그의 시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나무와 꽃, 강과 호수 등 자연을 소재로 하지만 그의 시선은 항상 현실로 향한다. 그의 시는 강인하고 우렁차며 활기차다. 낯선 감각과 사유의 깊이가 두드러진다.
‘호수에 오리 가족이 노닐고 있다/오리들은 호수의 치마를 다리는 다리미인가?/오리들 지나고 난 뒤/수면의 겹주름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오리와 호수’)
호수는 서정시에서 익숙한 소재다. 그런데 시인은 호수 위에서 오리가 헤엄치는 것을 다림질에 비유한다. 오리가 헤엄치며 변화시키는 호수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보내면서 동시에 옷을 다림질하는 노동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돌아보게 한다. 오리와 다리미의 형상이 비슷한 점도 흥미롭다.
꽃이라는 아주 오래된 소재도 그의 손을 거치면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 ‘여의도 벚꽃들은 해마다 봄 한철 노점상들을 먹여 살리느라 애를 썼는데 구청장도 못하는 그 일이 은근 자부이기도 해서 여기저기 꽃들을 자랑처럼 마구 펑펑 터뜨렸는데 갑자기 찾아온 팬데믹으로 작년과 올해는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게 괜스레 죄짓는 일 같다고 바람도 없는데 공들인 화장을 지우고 있는 것이었다.’(‘벚꽃들’)
단 한 문장으로 이뤄진 이 시에서 시인은 벚꽃이 피고 지는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일상의 생활 문제로 변주한다. 고형진 고려대 교수(문학평론가)는 시집에 실린 해설에서 “부드럽고 유약한 감성으로 세상 저편의 세계를 노래하는 것으로만 여겼던 서정시를 현실적 삶의 리얼리티와 시인의 시적 체험을 통해 묵직한 감동으로 변모하게끔 한다”고 평했다. 추천사를 쓴 나태주 시인은 “오늘날 우리 시단에서 이렇게 솔직담백, 명쾌, 단순하게 시를 쓰는 시인은 이재무 한 사람밖에 없지 싶다”고 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