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국 바이오젠이 보유한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전량(50%-1주)을 23억달러(약 2조7655억원)에 사들인다. 지분 인수가 마무리되면 삼성과 바이오젠의 ‘10년 동맹’이 마침표를 찍는다.
바이오젠과의 합작을 청산하는 삼성은 신약 개발에 뛰어들 계획이다. 2011년 바이오 사업에 첫발을 내디딘 후 의약품 위탁생산(CMO),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사업으로 기본기를 닦았다는 판단에서다. 부가가치가 큰 신약 개발을 통해 글로벌 바이오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바이오젠과 10년 합작 관계 청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젠이 보유한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50%-1주를 2조7655억원에 인수한다고 28일 밝혔다. 인수 대금은 유상증자 등으로 확보해 앞으로 6년간 총 네 차례에 걸쳐 지급할 예정이다. 인수 대금은 나눠서 주지만 지분 확보는 4월 30일 마무리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때 1차로 1조2000억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대금은 자체 보유 현금과 유상증자로 조달하는 1조2000억원을 활용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공장 증설용으로 1조8000억원을 별도로 추가 조달할 예정이다.
삼성과 바이오젠의 인연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사업에 뛰어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바이오기업 바이오젠과 85 대 15 비율로 합작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세웠다. 당시 바이오젠에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을 주당 5만원에 최대 50%-1주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권리(콜옵션)를 부여했다. 바이오 신약 개발 경험이 많은 바이오젠을 파트너로 끌어들이기 위한 ‘당근’이었다.
바이오젠이 2018년 6월 실제로 이 권한을 행사하면서 현재 지분 구도가 형성됐다. 바이오젠이 이때 들인 돈은 약 7595억원(주당 5만원, 이자 비용 포함)이다. 설립 초기에 투자한 500억원을 포함하면 약 8100억원을 삼성바이오에피스에 투자했고 10년 만에 2조원에 가까운 차익을 거두게 됐다. 회사 관계자는 “바이오젠과는 앞으로도 긴밀하게 협력할 계획”이라고 했다. 족쇄 푼 삼성 “신약 개발 추진”바이오젠과의 합작 관계 청산으로 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로 키우겠다는 삼성의 전략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그 중심에 신약 개발이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인수를 계기로 삼성 바이오 사업의 미래 준비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며 “신약 개발 등 중장기 성장 전략을 빠르게 추진하겠다”고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사실상 처음으로 ‘신약 개발’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은 이번 지분 거래로 신약 개발을 가로막아온 족쇄가 풀려서다. 바이오젠은 잠재적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삼성의 신약 개발에 소극적이었다. 삼성에는 바이오젠이 바이오 사업 경험이 없던 10년 전엔 필요한 존재였지만, 신약 사업에 뛰어들 만한 실력을 갖춘 뒤에는 ‘계륵’이 된 셈이다. 삼성이 바이오젠이 보유한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인수와 별개로 바이오젠을 통째로 인수하는 방안까지 추진했던 배경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젠의 보유 지분을 전량 사들이기로 함에 따라 바이오젠 인수합병(M&A)은 수면 아래로 내려가게 됐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삼성은 바이오젠으로부터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을 가져오기 위해 2~3년 전 글로벌 재무적 투자자(FI)까지 확보했었다”며 “분식회계 논란 때문에 계획을 접었지만 그 정도로 바이오젠과의 ‘동거’를 불편해했다”고 했다. M&A·기술도입 나설 듯삼성이 바이오 신약 개발에 나서면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바이오시밀러와 함께 3대 축이 완성된다. 출범 10년여 만에 글로벌 CMO업계 최정상에 오르고, 세계에서 바이오시밀러 판매 승인을 6개나 받아낸 ‘삼성 DNA’가 신약 개발에 집중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초기 신약 후보물질 발굴뿐만 아니라 해외 유망 바이오벤처의 후보물질을 들여오는 라이선스 인(기술 도입) 전략도 예상된다.
특히 메신저 리보핵산(mRNA) 등 세포·유전자 치료제 분야에서 삼성의 활동 반경이 넓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미 다양한 형태의 세포·유전자 치료제를 생산할 수 있는 5공장을 연내 착공하기로 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M&A 등을 통해 신약 개발 역량을 빠르게 확보하겠다”고 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