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알았으면 1000억원이라도…" IB·PEF들 땅을 친 사연[차준호의 썬데이IB]

입력 2022-01-30 13:48
수정 2022-02-18 00:02

"이럴 줄 알았으면 단돈(?) 1000억원이라도 올려서 쓸 걸…"

새해 벽두부터 마이크로소프트(MS)가 82조원에 블리자드액티비전을 인수한 빅딜이 공개되면서 일부 투자은행(IB)과 사모펀드(PEF)업계에선 때아닌 '복통'을 호소하고 있다. 3년 전 국내 최대규모 인수합병(M&A) 거래가 될 뻔했던 게임사 넥슨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관계자들이 주인공이다. 메타버스와 대체불가능토큰(NFT), 돈 버는 게임(P2E) 등 게임시장 내 격변이 예고되면서 게임사들이 M&A 시장에서 주목받자 넥슨이란 대어를 놓쳤다는 후회들이 나오고 있다. ◆'10조원'이 기로…후보들 "조금이라도 더 써 볼걸" 2019년 6월 경 김정주 당시 NXC 회장이 최종 매각의사를 철회하기 전까지 넥슨 인수를 위해 최종 경합한 곳은 국내 대형 게임사 넷마블과 PEF운용사 MBK파트너스였다. 두 곳은 한 때 손을 잡고 공동으로 인수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이어오기도 했지만 경영 주도권을 둔 갈등 끝에 결렬한 후 각자 입찰로 선회했다.

당시 복수의 거래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매각 측이 기대했던 매각가는 넥슨의 지주사 NXC가 보유한 넥슨지분 48% 기준 80억달러 중반 수준(약 10조~10조5000억원)으로 전해진다. 전체 기업가치론 20조원이 넘는 금액이다. 본입찰에 참여한 넷마블·MBK파트너스·KKR의 최초 제안가는 여기에 한참 미치지 못한 수준이었다. 이후 KKR은 내부적으로 입찰 포기로 가닥을 잡았고, 80억달러(한화 9조6000억원)까지 제시한 넷마블과 MBK파트너스가 최종 경합에 나섰다.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를 뛰어넘는 초대형 거래가 임박한 상황이었다.

이후 시장에서 알려졌 듯 넥슨 거래는 매각 측의 "거래를 중단하겠다"는 이메일 통보로 무산됐다. 당시 거래에 참여했던 여러 관계자들은 지금도 사석에서 철회 사유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고 한다. 후보들이 제시한 가격이 매각 측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데 무게가 실리지만 최근들어 김정주 회장의 부인인 유정현 NXC 감사의 최종 반대가 결정적이었다는 또 다른 가설도 등장했다.

◆결렬 이후 몸값 치솟아…"지금도 싸다"매각 결렬 이후 넥슨의 몸값은 치솟기 시작했다. 일본 도쿄증권 거래소에 상장된 넥슨의 주가는 2019년 본입찰 마감 당시만해도 주당 1617엔 수준에서 한 때 주당 3500엔 수준까지 급상승했다. 코로나 집단 감염증(코로나19)여파로 게임이 비대면 산업 수혜주가 된 덕이었다. 시가총액 기준으론 30조원을 뛰어 넘었다. 회사의 실적도 2019년 매출액 2조6840억원, 영업이익 1조208억원에서 2020년 매출 3조1306, 영업이익 1조1907억원을 기록하며 순항했다.

관계자들 사이에선 넥슨의 최근 주가 수준도 저평가 됐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넥슨의 대표 게임인 '던전앤파이터' 모바일 버전의 중국 출시가 번번이 미뤄지며 주가와 실적에 반영되지 않아서다. 던전앤파이터는 중국 시장에서만 연매출로 1조원을 벌어들이는 넥슨의 효자 IP 중 하나다. 모바일 버전도 2020년 중국 내 판호를 얻었지만 돌연 청소년 보호 조치 미흡을 이유로 현재까지 출시가 무기한 연기됐다. 업계에선 중국 당국의 한한령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KKR 등 미국계 PEF운용사가 새 주인이 되거나 MBK파트너스가 미국 내 게임사를 전략적투자자(SI)로 영입해 새 주인이 됐다면 중국 정부가 한한령을 이유로 규제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MS의 게임사 빅딜이 블리자드액티비전 한 건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넥슨의 대표 IP들을 활용해 MS의 구독형 모델인 '게임 패스'에 접목할 수 있기 때문이다. PEF입장에선 빅테크 기업들이 게임산업에 눈독을 들일 수록 투자 회수도 수월해질 수 있는 셈이다.

◆손편지 쓴 넷마블, M&A '룰' 바꾼 MBK파트너스 거래 규모가 규모인 만큼 거래 과정에서 해프닝도 많았던 딜로도 회자된다. 김정주 회장이 경쟁사인 넷마블 방준혁 의장에겐 회사를 절대 팔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넥슨 임직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넷마블 거래 관계자들은 딜 업무로 밤을 지새는 와중에도 진심을 담은 손편지까지 써서 넥슨 측에 전달했다고 전해진다. 넷마블 측에선 이를 통해 얼어붙은 넥슨 관계자들의 마음을 녹이면서 인수전에 가장 앞섰다고 내심 판단했다. 다만 PEF 등 다른 후보들의 의견은 다소 다르다. "어디까지나 매각 가격을 올리기 위해 넷마블을 후보로 둔 것이지 김정주 의장은 여전히 넷마블에 팔 생각이 없었다"는 분위기다.

당시 MBK파트너스의 행보에 M&A 시장 규칙이 바뀐 점도 유명한 일화다. 거래 규모만 10조원에 달하다보니 PEF들은 인수금융으로만 최소 절반 수준인 5조원 이상을 조달해야 했다. 넷마블 역시 보유 현금으론 거래를 마무리짓기 어렵다보니 금융권 차입이 필요했다. 가장 발빠르게 움직인 곳은 MBK파트너스였다. MBK파트너스는 입찰 전부터 모든 국내 금융권에 "다른 후보에 인수금융 제공하면 우리랑 거래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넌지시 통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쟁사들의 자금 조달을 막아 승기를 잡겠다는 '비책'이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손' 중 하나인 MBK파트너스의 권유(?)탓에 은행과 증권사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이 때문에 KKR과 넷마블 모두 인수금융 구하는 데 사활을 걸어야 했던 상황이었다. 넷마블은 "국내 대표 게임사가 해외에 넘어가는 것은 막아야한다"는 논리로 산업은행을 가까스로 설득했고, 해외 은행들에서 인수금융을 확약받아 입찰 직전에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MBK파트너스의 당시 행보 탓에 최근 조단위 거래에선 매각 측이 인수금융 조달에까지 규제를 두기 시작했다. 매각 측 입장에선 한 인수 후보가 주도권을 선점해버리면 다른 후보들과 경쟁시켜 가격을 높이는 '경매'에 지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앤컴퍼니의 한온시스템 매각 과정이 대표적이다. 한앤컴퍼니는 입찰 단계에서부터 본입찰 전까지 국내 금융사들에 인수금융을 미리 확약하지 못하도록 후보들에게 공지해 화제가 됐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