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법·인권법 판사'로 사법부 채우고 '민주 정부' 말하나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2-01-28 10:12
수정 2022-01-28 10:19

서울고등법원은 사법부 내에서 상징성이 남다른 법원이다. 대법원을 빼고 나면 가장 중요한 법원으로 꼽힌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 수원에 설치된 전국 6곳의 항소심(2심) 법원중 한 곳이지만, 언론에 오르내릴 만한 주요 사건의 판결을 도맡다시피하고 있어서다.

서울고법은 서울·인천·경기·강원권의 항소심을 관할한다. 그러다보니 어제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 판결이 내려진 정경심 교수나 김경수·드루킹 등 굵직한 사건의 2심은 거의 서울고법을 거쳤다. 경제계를 뒤집어놓은 통상임금 소송 2심도 대부분 서울고법에서 나왔다. 사법부내 서울고법의 지위가 권력형 비리 사건,대형 경제 사건 등의 수사를 주도하는 서울중앙지검이 검찰 내에서 갖는 위상과도 비견되는 이유다.

그런데 서울고법에서 이른바 '진보 판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져 사법신뢰를 훼손하고 있다. 대법원은 며칠전 '2022년도 고위법관 인사'에서 서울고법에 배치된 8명의 신임 고법판사중 절반인 4명을 우리법연구회와 그 후신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으로 임명했다. 두 단체 출신은 전체판사의 15%에도 못 미친다는 점에서 심각한 편향이다.

우리법과 인권법 판사들은 '진보적 세계관'을 재판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주관적 성향이 두드러진다. 편파성과 정치성 논란에 휩싸이는 경우가 잦을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최종 상고심(3심)을 담당하는 대법원은 진보 판사들에 이미 장악된 상태다. 14명의 대법관중 절반인 7명이 뚜렷한 진보성향 판사들로 채워졌다. 김명수 대법원장부터 우리법과 인권법에 모두 관여한 인물로, 진보판사의 시초격이다. 박정화·노정희·이홍구 대법관은 우리법 연구회, 김상환·오경미 대법관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여기에다 민변출신 김선수 대법관을 포함한 7명은 대법원내 '진보 벨트'로 불린다. 나머지 대법관 7명중에서도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이가 상당하다. 이래 저래 대법원 진보 벨트는 완성단계다. 항소심(2심)과 상고심(3심)으로 갈수록 특정 성향의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구도가 구축된 셈이다. 재판받는 이들도 담당재판부가 정해지면 우리법이나 인권법 소속 판사인지부터 살피는 일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진보판사들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담당하는 핵심보직도 대거 꿰차고 있다. 헌법재판을 전문으로 하며 대법원과 위상을 겨루는 헌법재판소의 수장 유남석 재판관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방역패스 가처분' 판결에서 보듯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서울행정정법원도 우리법 연구회 출신(장낙원)이 이끌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관심이 중심되고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역시 우리법연구회 출신 노정희 대법관이 겸임하고 있다. 청와대가 문재인 대선 캠프 출신의 조해주 선관위 상임위원을 유임시키려다 2900여 직원들의 집단발발로 무산된 초유의 사태도 노 위원장의 진보적 성향과 무관하다고 보기 힘들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통령제가 성공하려면 행정부와 입법부에 대한 사법부의 우위가 필수다. 사법부가 행정부와 입법부의 독선적·급진적 정책을 떠받치는 보완적 기구로 전락한다면 민주주의는 궤도 이탈이 불가피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이어 '3기 민주 정부'를 자처하는 문재인 정권에서 사법부가 최소한의 형식적 민주성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마치 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백광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