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성이 어깨를 구부린 채 망치질을 한다. 높이 22m, 무게 50t에 달하는 거인이지만 허공을 휘젓는 손이 허망하게 보인다. 뭘 만드는지도 모른 채 끝없이 손을 움직인다. 반복되는 일상에 찌든 샐러리맨이 떠오른다. 서울 신문로 흥국생명 본사 앞에 세워진 미국 조각가 조너선 브로포스키의 ‘해머링 맨’ 이야기다.
《거리로 나온 미술관》은 무심코 지나쳤던 공공미술 작품을 한데 아울러 보여주고 설명한다. 공공미술이란 개념이 국내에 안착한 1980년대부터 2021년까지 거리에 나온 작품과 건축물을 공공미술 변천사와 엮어 해설한다. 저자는 “길거리 조형물에 호기심을 갖고 들여다 보면 미술에 관한 안목이 넓어진다”며 “도시를 캔버스 삼아 세워진 건축물도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지만 길거리에 예술품이 놓인 지는 한 세기가 채 안 된다. 1951년 프랑스에서 건축 비용의 1%를 예술품 제작에 쓰는 ‘1%법’이 제정됐고, 미국에선 1963년 ‘건축 속의 미술 프로그램’을 통해 공공미술을 장려했다. 국내에선 1960년대 후반 관공서와 광장 등에 현대미술품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공공미술 작품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예술품 설치를 권장하던 법을 서울시가 의무 사항으로 바꾸면서다. 한국프레스센터 앞 광장에는 이우환의 ‘관계항-만남의 탑’이 놓였다. 1982년 대우는 3억4000만원을 들여 힐튼호텔 로비에 헨리 무어의 ‘여인 와상’을 설치했다.
공공미술이 확산하면서 새로운 논란도 불거졌다. 미국 작가 프랭크 스텔라의 ‘꽃이 피는 구조물(아마벨)’을 둘러싼 논쟁이다. 1996년 포스코빌딩 정문 앞에 세워진 가로·세로·높이가 각 9m인 거대한 꽃모양의 구조물로, 멀리서 보면 꽃의 형상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고철 덩어리다.
흉물 논란이 일자 포스코는 1998년 철거 후 이전을 결정했다. 미술계에선 포스코가 작품을 그저 자산으로 취급한다며 반발했고 결국 살아남았다. 저자는 “논쟁 이후 홍보와 교육 등 포스코가 기울인 노력이 대중의 인식을 바꿨다”며 “아마벨이 지금은 테헤란로의 명품으로 자리잡았다”고 설명한다.
작품이 어떻게 대중을 만나느냐에 따라 시선이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조형물을 설치할 때 주변 환경에도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저자는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이 거리에 나왔지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며 “미술관에서 회화작품 전시 방식에 공을 들이듯 조형물이 설치되는 배경도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