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리테일은 2005년 유통 전문 기업으로 독립한 이래 ‘빅3’의 벽을 넘지 못했다. 백화점은 롯데쇼핑이 선점했고, 대형마트는 신세계그룹 차지였다. M&A(인수·합병)로 외연을 확장한 현대백화점그룹 역시 지난해 매출 약 25조원으로 GS리테일(16조원, 이상 추정치)을 멀찌감치 앞섰다.
허연수 GS리테일 부회장이 ‘조용한 반란’에 나서고 있다. 최근 1년 간 요기요, 메쉬코리아, 무신사 등 12개사에 5500억원을 투자했다. 2011년부터 합산하면 약 40개사에 1조원을 쏟아부었다. 허 부회장이 일종의 모내기식 투자로 달성하려는 목표는 ‘퀵커머스 1등’이다. ‘사람과 펫(반려 동물)을 위한 신선한 먹거리를 반나절이면 문 앞에 배송’해주는 e커머스 플랫폼을 경쟁사보다 빠르게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요기요와 GS샵을 양대 플랫폼으로 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GS리테일은 지난해 8월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와 공동으로 인수한 요기요를 자사 ‘간판’ 플랫폼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GS더프레시, GS프레시몰 등 기존 신선식품 온라인몰을 요기요에 통합시키는 전략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GS리테일의 가장 큰 고민은 소비자들을 유입시킬 온라인 간판이 마땅치 않았다는 것”이라며 “먹거리는 요기요로 통합시키고, 패션 뷰티 등 비식품은 홈쇼핑에 기반한 GS샵으로 키우는 것이 중장기 비전”이라고 분석했다.
요기요의 MAU(월간활성이용자수)는 지난달 말 약 950만명에 달했다. 배달앱 시장에서 배달의민족에 이어 2위다. 업계에서 처음 시도한 구독 서비스인 ‘요기패스’는 출시 두 달만인 지난달에 가입자수가 50만명을 넘었다. GS리테일은 우선 전국 330여개에 달하는 수퍼마켓을 요기요와 결합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배민의 B마트와 같은 개념이지만 구현 속도는 훨씬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 GS리테일 관계자는 “GS수퍼마켓은 일찌감치 가맹점 비율을 50% 이상으로 올려 경쟁사와 달리 연간 100억원 이상의 흑자를 낸다”며 “대부분 도심 한복판에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배민이 B마트 활성화를 위해 도심에 MFC(온라인 전용 소형 물류센터)를 짓는 것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배민보다 한 발 앞선 퀵커머스 1등 전략
GS리테일은 2005년 편의점 1860개, 백화점 3개, 할인점 12개, 수퍼마켓 86개 등의 네트워크를 갖춘 종합 유통기업으로 출범했다. 당시 LG칼텍스정유(현 GS칼텍스) 주유소와의 시너지도 구상했지만,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는데엔 실패했다. 2006년 첫 선을 보인 GS왓슨스라는 헬스&뷰티 전문점도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나마 편의점과 홈쇼핑이 양대 축으로 회사를 지탱했다.
급변하는 유통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GS리테일은 지난해 홈쇼핑과 합병 이후 공격 모드로 돌아섰다. 최근 10년 간 투자액의 절반 가량이 작년 한 해에 단행됐다. ‘엔젤 투자’에 가까웠던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도 방향성을 찾기 시작했다. 지난해 메쉬코리아와 카카오모빌리티에 각각 508억원, 650억원을 투자한 것이 대표적이다. 퀵커머스를 실현하기 위한 ‘속도’에 집중했다는 얘기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쿠팡, 네이버, 컬리 등은 도심 외곽에 대형 물류센터를 만들어 주문 후 다음날 새벽에 배송해주는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며 “편의점과 수퍼마켓을 보유한 GS리테일은 도심에 특화된 1시간 이내 배송(퀵커머스)을 구현하는데 최적화된 기업”이라고 말했다.
공생형 투자 전략도 허 부회장만의 뚝심이 빚어낸 성과로 평가된다. 펫프렌즈만 해도 사모펀드인 IMM프라이빗에쿼티와 공동으로 투자했다. IB업계 관계자는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그룹은 투자를 해도 최대주주가 되길 원하고, 경쟁이 될만한 플랫폼엔 돈을 넣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며 “GS리테일은 상대적으로 절박함이 강해서인 지 투자 유연성이 높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허 부회장의 지난해 투자 목록엔 무신사, 쿠캣 등 패션과 음식을 대표하는 플랫폼 기업들이 들어 있다. IB업계엔 GS리테일이 당근마켓의 주요 주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 부회장의 ‘퀵커머스 1등’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요기요만 해도 최근 부사장 2명이 퇴사하는 등 인력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퀵커머스가 새벽배송 만큼 시장 규모를 키울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논쟁이 분분하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