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세계 최고령 MC

입력 2022-01-26 17:25
수정 2022-02-02 19:12
1951년 1·4후퇴 때였다. 인민군을 피해 황해도 재령에서 연평도로 피란 간 그는 미국 군함을 타고 부산에 도착했다. 해주음악전문학교 성악과에 다니던 음악도가 졸지에 실향민이 됐다. 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가족과 생이별한 뒤 바다를 건넌 그날을 잊지 못해 그는 예명을 ‘바다 해(海)’로 지었다. 이후 본명 송복희 대신 송해의 삶을 새로 일궜다.

피란 중에도 그의 ‘끼’는 죽지 않았다. 통신병으로 입대한 그는 3군 노래자랑 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딴따라’의 길로 들어섰다. 제대 뒤 전국을 돌며 유랑극단 생활을 했다. 악극단에선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었다. 관객을 웃기는 바람잡이도 해야 했다. 이때의 밑바닥 경험이 연예 인생의 밑거름이 됐다.

1960년대 방송으로 무대를 넓힌 그는 가수와 코미디언, MC를 넘나들며 마음껏 끼를 발산했다. 최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87년에는 20세 아들의 교통사고 앞에 무릎이 꺾였다. 모든 일을 접고 실의에 잠겨 있던 그는 ‘전국노래자랑’ MC 제안을 받고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

이후 35년째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고 있다. 단일 프로그램 최장기간이다. 올해 95세인 그가 현역 최고령 연예인이자 MC로 기네스 기록 등재를 앞두고 있다. 영국 기네스협회 심사를 통과하면 국내뿐 아니라 ‘세계 최고령 MC’로 공식 인증을 받게 된다. 혈혈단신으로 월남한 지 71년 만이다.

그의 성공 비결은 남다른 프로정신과 현장제일주의, 체력관리다. 그는 프로그램에 앞서 철저한 직업의식으로 무장한다. 녹화 전날에는 해당 지역에 도착해 사투리와 특산품까지 샅샅이 조사한다. 나보다 아픈 사람들에게 위로와 웃음을 주려면 남보다 더한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버스(B)와 지하철(M), 도보(W)로 움직이는 ‘BMW’를 체력유지 비법이라고 말했다. 또 매일 목욕탕에서 심신을 가다듬고 우거지국밥과 마늘을 즐겨 먹는다. 이렇게 다진 체력으로 대본을 외우며 아이디어를 깨알같이 적는다. 그 과정에서 매주 바뀌는 대본만큼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

MC 부문 외에 최고령 배우 기록 보유자는 2016년 작고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젤딘이다. 그는 101세 생일까지 공연했다. 한국 현대사의 격랑을 온몸으로 건너온 송해의 ‘세계 최고령 MC’ 기록이 101세 이상까지 이어지길 기원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